12일 한국망명을 신청한 黃長燁(황장엽)은 북한이 자랑했고 북한을 대표했던 지식인이다. 金日成(김일성)생존 때 金正日(김정일)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친데서 나타나듯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를 체계화한 장본인으로 김정일의 최측근 원로실세다. 그가 김일성 고모의 조카사위라는 설(說)도 있었으나 정부당국은 그가 김일성과 혈연관계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올해 북한 신년사(신문 공동사설)발표 때의 북한 주석단 서열로는 19위, 작년 김일성 2주기 추모대회 주석단 서열은 21위였으며 현재 권력서열은 24위로 파악된다. 그러나 북한내에서의 실제 위상은 서열보다 높게 평가된다. 전성기 때 그의 권력서열은 13위였다.
그는 42세 때인 65년에 김일성대학 총장을 역임한 철학자로 지난 84년 김일성이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홀로 수행했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김정일이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 출생설」을 이론화하고 김일성 부자 우상화를 위한 각종 신화를 조작하는 등 북한의 권력핵심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70년대 중반에는 비동맹권을 대상으로 주체사상연구소를 개설하는 등 주체사상의 해외홍보에 노력했고 이를 토대로 지난 93년말부터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국회 외무위원장)으로 당차원의 외교를 책임졌다.
함북 길주태생인 그는 70년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2년부터 83년까지 무려 12년간이나 최고인민회의 의장(국회의장)을 지냈다. 80년 6차당대회에서는 당비서로 선임됐다.
그는 94년 이후에도 중국 쿠바 베트남 러시아는 물론 서유럽 남미를 순방하는 등 정력적으로 활동, 서구와 통하는 북한의 대외창구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들었다. 이번에도 일본방문을 마치는 대로 미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4자회담 설명회의 불발 등으로 미국방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온순한 성격에 두뇌가 명석하며 논리정연하나 말수가 적고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으로 알려졌다. 술 담배를 안하며 남에게 흠을 잡히려 하지 않아 대인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전해졌다.
그는 북한의 대남책임자인 金容淳(김용순)당비서 등 강경파들에 비해 철학자 출신답게 온건하고 합리적이다. 그는 『한반도의 전후(戰後)모순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북한내 과격파들과는 사고체계가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으로는 모스크바 유학중에 결혼한 부인 박승옥씨(66)와 2남2녀가 있다.
〈김기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