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97 선진정치/선거자금]법정한도액 준수 不信

  • 입력 1997년 1월 4일 20시 06분


「鄭然旭기자」 대통령직선제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정치적 선택이 비교적 굴절됨이 없이 반영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폐해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폐해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대선자금」이다. 대선자금이 상상을 넘어서는 천문학적 규모로 뛰어오른 것은 16년만에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된 지난 87년 「1노(盧)3김(金)」 대결 때였다. 당시 민정당 정권은 문자그대로 대선에 사활(死活)을 걸고 기업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 「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쏟아부었다. 「조(兆)」단위의 선거자금 얘기가 처음 나온 것도 그 때였다. 「설마…」하던 의구심은 뒷날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져나오면서 「있을 수 있는 일」로 뒤바뀌었다. 92년 대선에서 민자당 후보로 당선된 金泳三(김영삼)대통령도 비자금 사건 때 『선거를 치르면서 「이렇게 돈을 쓰다가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거법을 고쳤지만 이번 대선에서 법정선거비용한도액(후보1인당 3백5억원)이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선관위의 金弧烈(김호열)홍보관리관은 『92년과 이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통합선거법이 처음 적용되는 대선인데다 상대후보의 감시로 언제 폭로가 터져나올지 몰라 음성적인 매표(賣票)행위는 엄두도 못낼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학계 및 시민운동단체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金浩鎭(김호진)고려대교수는 『통합선거법의 적용을 받은 지난 4.11총선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법정선거비용을 지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선거비용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더한다. 여야가 지난해 연말 합의통과시킨 선거법개정안은 신설된 TV토론비용의 국고부담 등 공영제요소를 강화했지만 한편으로는 「돈안쓰는 선거」를 무색케하는 「독소조항」을 여기저기 끼워넣었다. 우선 유급선거운동원의 수를 3천명에서 6천명 규모로 두배나 늘렸다. 『22일간의 대선운동기간중 이들의 일당은 평균 4만∼5만원선으로 모두 60억원의 비용부담이 예상된다』는 게 선관위측의 계산이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적어도 수십배는 들 것』이라고 말했다. 주로 여당조직에 해당되는 지구당조직가동비와 사조직지원비 등은 아예 「통제불능」이다. 92년 대선의 사례를 살펴보면 미뤄 짐작이 가는 일이다. 당시 민자당은 조직가동비로 2백37개 지구당에 평균 5억원씩 지원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각종 직능대책반 선거자금과 유세비용 등 중앙당차원의 지출 규모도 이에 못지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가는」 선거자금의 속성 때문에 전문가들이 내놓는 처방도 「제재조치강화」 정도다. 朴元淳(박원순)변호사는 『선거이후라도 부정행위에 대해 철저히 시비를 가릴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특히 선거후 논공행상을 노린 사조직의 은밀한 활동은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호진교수는 『92년 대선 때도 비용초과로 적발당한 대선후보는 한명도 없었다. 대선에도 선관위의 비용실사를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며 실사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을 촉구했다. 허술한 선거법망을 다시 손질해야 한다는 제안도 많았다. 兪在賢(유재현)경실련사무총장은 『선거전 중앙당차원의 각종 행사는 사실상 선거운동인데도 선거비용에 넣지 않는다』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총괄적으로 지정해 엄격히 규제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선관위의 한 고위관계자도 △합법적인 정당활동을 빙자한 사전선거운동비용 △사조직활동비 △자치단체장의 직무활동을 빙자한 선심성행사 등은 제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음성적인 대선비용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제안도 이어졌다. 김호진교수는 TV 등 언론매체를 통한 선거운동 방안을 제시했다. 신한국당의 朴成範(박성범)의원도 『대선은 후보대 후보의 세력싸움이므로 지구당중심의 국지전보다 TV 등 미디어선거전에 주력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미디어 사용비는 그대로 공개되므로 정치자금의 투명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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