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라 가쓰히로 일본 도시샤대 총장은 1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동주 시인의 삶과 그의 시를 단서로 새로운 ‘평화의 문화’를 구축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도시샤대 제공
“서거 90주기, 100주기에도 윤동주 시인은 ‘평화의 초석’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습니다.”
16일 고 윤동주 시인(1917∼1945·사진)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일본 도시샤(同志社)대의 고하라 가쓰히로(小原克博) 총장은 11일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윤 시인은 도시샤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1943년 7월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에 가담한 혐의로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가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고하라 총장은 “한 학생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아픔을 역사의 교훈으로 마음에 새기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도시샤대가 세상을 떠난 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윤 시인에게 학위를 수여하려는 까닭은 뭘까. 이 대학이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건 처음이다. 고하라 총장은 “윤동주 서거 80주기인 2025년은 한국의 광복 80주년이자, 일본이 전후 80년을 맞는 해”라며 “이런 역사적 전환점에서 과거에 전쟁과 식민 지배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 윤동주는 혹독한 상황에도 시를 쓰며 살아갔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고하라 총장은 “한강 작가의 ‘과거와 죽은 자를 마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윤 시인의 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을 언급하며 “한강이 던진 핵심 질문인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를 윤동주의 시에서도 느낀다”며 “시대를 초월해 질문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질문에 ‘Yes(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과거와 죽은 자들을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다면 책임 있는 미래를 전망할 수 없으니까요.”
윤 시인의 대학 후배이기도 한 고하라 총장은 도시샤대 학부·대학원을 졸업하고 1996년부터 동 대학 신학부에서 교편을 잡았다. 수업에서도 윤동주의 시를 자주 소개해왔다고 한다. 애송하는 시도 ‘서시’와 ‘새로운 길’ ‘십자가’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 무척 많았다. 학생 때 2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한국 스터디투어 참가 때마다 연세대를 방문해 윤동주 시비와 기념관을 찾았다고 한다.
윤동주의 시는 어떤 순간에 가장 가슴에 와닿을까. 고하라 총장은 “크고 작은 일에 쫓겨 마음의 여유를 잃을 때”라고 했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하늘과 바람, 별’처럼 변함없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광대함과 섬세함, 세계의 신비로움, 그리고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부조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더 큰 맥락 속에서 나 자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6일 수여식에서 명예박사 학위는 윤 시인의 조카이자 유족 대표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받는다. 고하라 총장은 이 자리에서 ‘윤동주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기념 강연도 할 예정이다. 그는 “80주기와 학위 수여를 계기로 윤동주의 시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진 세대가 더욱 성장할 수 있어요. 그들이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를 가져다주길 기대합니다. 윤동주는 그러한 평화의 문화를 가져온 마중물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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