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목격’ 김계원 前 박정희 비서실장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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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 받은뒤 1988년 사면복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계원 전 창군동우회 회장(사진)이 3일 오후 1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족이 4일 밝혔다. 향년 93세. 김 전 실장은 1979년 10·26사태 당시 궁정동 현장에 있었던 주요 인물이다. 사건 이튿날 오전 1시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당시 ‘영애’ 박근혜에게 알려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는 첫 반응을 들은 사람도 김 전 실장이었다.

 1923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김 전 실장은 연희전문학교와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박정희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과 중앙정보부장, 주대만 대사를 지냈다. 1978년 12월 주일 대사로 떠난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온화한 성품으로 박 전 대통령의 군 후배이기도 한 김 전 실장은 “저는 정치도, 경제도 모른다”며 자리를 사양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하라”며 청와대에 데려왔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이 부임하고 1년이 채 안 돼 당시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10·26이 터졌다.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와 함께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중요임무 종사 미수 공모 혐의를 받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이어 1982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고 1988년 특별 사면 복권됐다. 재판 과정에서 고인은 10·26이 정치적 목적으로 계획된 사건이 아니라 김재규의 우발적 살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실장은 병상에서 최순실 일가의 국정 농단 사건을 전해 듣고 박근혜 대통령을 많이 걱정했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대통령 시해 현장에서 대응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에 대해 고인은 1998년 언론 인터뷰에서 “김재규의 첫 번째 권총이 고장 난 것은 내가 순간적으로 그를 밀었기 때문”이라며 적극 대응했다고 반박했다. 또 “사건 직후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에게 보고했으나 최 총리가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 서거를 김 실장으로부터 보고받지 않았다’고 위증하는 바람에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정 최후 진술에선 “김재규가 왜 나를 죽이지 않았는지 원망스럽다”며 자신에게 씌워진 내란미수 등의 혐의가 억울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서봉선 씨, 장남 병덕(기화산업 대표) 차남 병민 씨(재미)와 딸 혜령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 발인은 7일 오전 10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하기 위해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이다. 070-7816-0253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박정희#비서실장#김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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