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3차례 2세 심은 하정웅씨
광주시립미술관 2그루 훼손 등 고사… 남은 한 그루 2014년 이어 2015년도 열매
보급운동 나선 日人들 광주서 포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당시 인구 24만 명 중 7만4000여 명이 숨지고 건물 절반 가까이가 잿더미로 변했다. 원폭 투하 지점 반경 4km 이내의 생명체가 전멸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전쟁의 참화가 너무 깊었기에 사람들은 ‘기적의 나무’로 불렀다.
이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일본의 수목(樹木) 의사인 에비누마 마사유키(海老沼正幸) 씨다. 1994년 에비누마 씨는 이 나무에서 씨를 받아 발아시키고 접목하는 방식으로 2세 나무를 살려냈다. 미술작가인 미야지마 다쓰오(宮島達雄) 씨는 피폭된 지 49년 만에 ‘생명목’으로 거듭난 감나무에 예술이라는 옷을 입혀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1996년 도쿄(東京) 다이토(臺東) 구 소학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3개국 250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 감나무 2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광주광역시에 뿌리내렸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 식재된 유일한 나무다.
감나무를 광주로 가져온 이는 재일 사업가인 하정웅 씨다. 하 씨는 2000년 4월 광주 비엔날레를 앞두고 광주시립미술관에 감나무를 처음 심었다. 두 차례나 고사(枯死)해 재식수를 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다. 처음 심은 나무는 한 달 후 반일 감정을 가진 사람에 의해 훼손돼 고사했다. 재식수한 나무도 훼손돼 고사한 후 2002년 시립미술관 옆 중외공원 숲 속 비밀 장소에 심은 감나무는 광주시립미술관 직원들의 보살핌 속에 자라 왔다. 지난해 처음으로 열매를 맺은 데 이어 올해도 지난달 감 2개가 열려 시립미술관 직원들이 씨를 받아 두었다.
25일 광주에서는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피폭 감나무 2세를 조명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일본의 비영리 법인 ‘시간의 소생-감나무 심기 프로젝트 실행위원회’가 광주시립미술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감나무 프로젝트, 광주에서의 역사와 의미’ 포럼이다. 포럼에는 피폭 감나무를 살려 전 세계에 전파하고, 광주에 뿌리를 내리게 한 주인공 3명이 참석했다.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이자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인 하정웅 씨는 평생을 모은 미술작품 1만여 점과 도서자료 6000여 점을 한국과 일본의 미술관 및 박물관, 대학에 기증한 메세나 운동의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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