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디턴 “한국 빈부격차는 유럽도 겪는 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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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프린스턴대서 기자회견
“새벽 스웨덴 억양 전화에 수상 직감, 불평등 심화땐 민주주의 훼손 우려”

“노벨상을 수상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요.”(프린스턴대 학생)

“(연구실로) 돌아가서 다시 일해야죠.”(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12일(현지 시간) 오후 1시 반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뉴저지 주 프린스턴대의 알렉산더홀 강당에서는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디턴 교수(70)의 첫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학 측은 캠퍼스 내에서 이용하는 소형 승용차로 디턴 교수를 연구실에서 기자회견장까지 태우고 왔다. 그는 별도의 출입구를 이용해 인기 스타처럼 등장했고 미국 공휴일인 콜럼버스데이인데도 회견장을 가득 채운 300여 명의 교직원과 학생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맞았다.

칠순 노교수의 얼굴은 쑥스러움으로 상기됐지만 크리스토퍼 아이스그루버 총장 등 프린스턴대 사람들의 표정엔 자부심과 긍지가 묻어났다. 프린스턴대는 다양한 분야에서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2000년 이후 경제학상 수상자만 6명이나 된다. 디턴 교수는 소비, 빈곤, 복지에 대한 분석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시실리아 라우스 공공국제관계대학 학장은 “그는 학생들을 독려해 불가능할 것 같은 연구를 성취하게 만드는 최고의 교수”라고 소개했다.

찬사가 이어지는 동안 디턴 교수는 때론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때론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함께 즐거워했다. 그는 소감을 발표하면서 “요즘 경제학은 (예전에 비해) 사회학, 정치학, 인구학, 심지어 철학과도 매우 밀접해졌다. 사회과학 학문들이 융합하는 시대이다. 이런 흐름에 걸맞은 ‘폭넓은 학문의 영역’을 제공해 주는 프린스턴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대는 “탁월한 학부생과 대학원생, 훌륭한 동료(교수)들이 있는 곳”이라고도 했다.

디턴 교수는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이른 아침(오전 6시 10분)이어서 좀 졸렸다”며 청중을 웃긴 뒤 “내가 후보에 올라 있는 건 알았지만 너무 훌륭한 (경쟁)후보가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방이 스웨덴 억양의 영어로 ‘여기는 스톡홀름인데 매우 중요한 전화’라고 했을 때 ‘거의 다 된 것 같다(노벨상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개개인의 경제적 선택에 대한 분석’으로 유명한 그는 이날도 “우리는 인도의 빈곤율이든, 미국의 사망률이든 총합으로만 보려 하는데 개인의 문제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 개개인의 복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적 핫이슈인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대해서도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부자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 제도가 굳이 필요 없고, 세금 감면 등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디턴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그 분야는 내가 잘 모른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한국 등의 빈부격차 문제는 유럽도 겪는 문제이고, 중국의 극빈층이 지난 20∼30년 사이 크게 줄어든 점은 환영할 일”이라고만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뒤 진행된 축하행사에서 201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심스 교수는 “내가 프린스턴대 교수로 온 건 디턴 교수 때문이다. 그는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쁨과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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