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얼굴없는 천사’는 72세 주꾸미 할머니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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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순 할매쭈꾸미’ 창업자, 올해도 쌀 2000kg 기부… 10여년째 200만원씩 선행

해마다 서울 동대문구청과 주민센터에 쌀과 기부금을 몰래 놓고 사라지던 ‘얼굴 없는 천사’의 신원이 밝혀졌다. 주인공은 용두동에서 주꾸미집을 운영하는 나정순 할머니(72·사진). 할머니는 24일 20kg짜리 쌀 100포대를 아들과 함께 싣고 와 구청 앞에 내려놓았다. 한사코 이름 알리기를 거절했지만 구청 측의 간곡한 설득에 못 이겨 이름을 공개하고 수줍게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나 할머니는 10여 년 전부터 매년 200만 원 정도를 기부해왔다. 돈이 조금씩 모일 때마다 수시로 동 주민센터나 구청을 찾아 홀몸노인 생활비나 소년가장 장학금 등으로 돈이나 쌀을 내놓고 사라졌다. 기부금을 받은 공무원에게 “누가 보냈는지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도움을 받은 분들도 할머니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할머니의 선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유명인사였다. 용두동의 명물 주꾸미집의 ‘원조’인 ‘나정순 할매쭈꾸미’의 창업자이기 때문. 30년 전 지붕에서 비가 샐 정도로 낡은 건물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매콤한 할머니의 손맛은 순식간에 소문이 나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후 할머니 가게가 있는 일대 골목에 10여 개의 가게가 생겨 주꾸미 거리가 생겼다.

나 할머니는 “손님들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나고 이제 아들도 다 자랐으니 다시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에서 기부를 하고 있다”며 “주꾸미가 나한테 희망이 되었듯 내가 기부한 쌀이 설 명절을 맞아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
#주꾸미 할머니#나정순 할매쭈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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