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돈 뜯던 가출소녀, 친구 고민 상담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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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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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여중생 마음 녹여준 ‘교과부 위 클래스’

‘위(Wee) 프로젝트’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위기 학생과 이들을 도운 교사 및 기관을 격려하는 ‘제2회 위 희망 대상’ 시상식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교육과학기술부 제공
‘위(Wee) 프로젝트’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위기 학생과 이들을 도운 교사 및 기관을 격려하는 ‘제2회 위 희망 대상’ 시상식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교육과학기술부 제공
경기 시흥시 군서중 3학년 정모 양(15)은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여덟 살 때부터 고모와 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걸핏하면 매를 맞으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죽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정 양은 가출을 반복했고 자연스럽게 비행청소년이 돼 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술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친구들의 돈을 뺏고 오토바이도 훔쳤다. 친구를 때려 경찰서를 들락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 양은 지금 군서중의 또래상담자로 활동하고 있다. ‘비폭력 문화지킴이단’에 소속돼 학교폭력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정 양은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니었는데 마음속에 분노가 있어서 그랬는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누가 와도 말리지도 못할 만큼의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고 회상했다.

정 양을 바꿔놓은 곳은 ‘위(Wee) 클래스’다. 지난해 말 아버지와 함께 경기 시흥시로 이사 온 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정 양은 우연히 학교 내 위 클래스의 문을 두드렸다.

큰 기대는 없었다. 전학을 오기 전에도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벌 받는 기분이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상담경력만 5년이 넘는 최미자 상담사(44·여)는 정 양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줬다. 고민이 생기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마다 정 양은 ‘위 클래스’를 찾았다. “가출해서 놀러가자”는 이전 학교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은 날에도 그랬다. “또 집을 나가면 누구보다 걱정할 아버지와 상담사 선생님은 어떡하지?” 정 양은 최 상담사의 말에서 잊고 있었던 친어머니의 정을 느꼈다. 정 양은 서서히 마음을 돌렸다.

정 양은 “누군가가 내 말에 공감해 주고 또 내 마음을 붙잡아 주려고 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다. 귀 기울여 듣고 따뜻하게 공감해 주는 위 클래스의 상담이 없었다면 이전 학교에서 어울렸던 친구들처럼 계속 말썽을 부리다 퇴학당하거나 소년원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 양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위 희망대상’에서 학생부문 수상자에 뽑혀 20일 상을 받았다. ‘위 프로젝트’는 학교와 교육청, 지역사회가 연계해 학생 안전망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각 학교 위 클래스, 교육지원청 단위의 위 센터, 시도교육청이 운영하는 위 스쿨(대안학교)이 중심이 돼 추진하고 있다. 이날 정 양과 함께 △학생 △지도교사 △기관 △온라인 상담 부문 등에서 37가지 우수사례가 선정돼 상을 받았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위기학생들을 지원하고 상담하는 일은 우리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다”며 “위 프로젝트를 통해 우수사례를 발굴해 보급하고 학교폭력 문제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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