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의 ‘키다리 오빠’ 38년만에 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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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외로웠던 동두천 소녀에게 따뜻한 손 내밀었던 그 미군
페이스북 덕분에 연락 닿아… 美투어 공연 중 극적 상봉

1972년 경기 동두천 미군 부대 근처. 19세 미군 병사 로널드 루이스 씨의 눈에 늘 혼자 바깥에 앉아있던 15세 소녀가 들어왔다. 무척 외로워 보였던 소녀의 이름은 김인순. 그런데 소녀는 또래 한국 아이들과는 달라 보였다.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미군병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가 혼혈아라며 또래들로부터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는 것을 알게 된 루이스 씨는 동료들과 함께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소녀에게 루이스 씨는 ‘키다리 아저씨’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루이스 씨가 이듬해 귀국한 이후 두 사람의 인연은 끊기는 듯했다.

“단 한 번도 루이스의 눈을 잊어본 적이 없어요.”

루이스 씨의 턱수염은 어느덧 희끗희끗해졌지만 갈색의 깊고 따뜻한 눈은 소녀가 기억하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16일 미국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가수 인순이(54)는 ‘키다리 아저씨’ 로널드 루이스 씨(58)를 만나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38년 만의 재회였다.

현재 미국 뉴저지 주 시코커스에 머물고 있는 인순이는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그간 너무 오랫동안 못 만났기 때문에 담담했고 만나도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며 이틀 전의 감동을 전했다.

인순이는 루이스 씨의 세심한 배려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이후 가졌던 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마치 친여동생을 대하듯 그들은 맛있는 음식과 옷, 귀걸이를 사줬어요. 못 알아들을까봐 영어로 천천히 말해주기도 했고요”

그는 오래전부터 루이스 씨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만날 길이 없어 희망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고 했다. 하지만 한 미군 장성의 도움과 페이스북 덕분에 기적적으로 루이스 씨와 연락이 닿았다. 인순이는 “3, 4월경 처음으로 연락처를 알게 됐다. 그때 7월에 미국 공연이 있으니 가겠다고 통화했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두 사람의 감동적인 만남에 루이스 씨 가족을 포함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기쁨을 나눴다. 루이스 씨 교회 지인들의 권유로 인순이는 즉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했고 모두가 그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다고 델라웨어온라인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어릴 적 인순이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던 루이스 씨는 17일 열린 인순이의 공연을 관람했다. 인순이는 “내 공연을 보고 ‘어릴 적 그렇게 수줍어했던 소녀가…’라며 말을 잇지 못하더라”라며 웃었다. 그는 이날 루이스 씨에게 꽃과 오리 7마리가 그려진 조각을 선물로 건넸다. 조각에는 ‘당신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Without You, I′m Nothing)’라고 적혀 있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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