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학생에 ‘사랑의 PC 보내기’시작… ‘정보 격차’ 해소 첫발

동아일보 입력 2010-09-01 03:00수정 2010-09-0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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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 메신저… 이젠 ‘배움의 창’ 활짝 열래요” 《김지원(가명·15) 양은 또래 친구들처럼 게임을 좋아하진 않는다. 친구들과 PC방에 놀러가도 ‘싸이월드’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메신저만 한다. 집에 있는 컴퓨터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지원이는 PC방을 가야만 친구들과 ‘일촌’을 맺고, 미니홈피에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남기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지원이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자기 방에 컴퓨터가 있은 적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인 김지원 양이 31일 오후 교장실에서 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오른쪽)에게서 개인용 컴퓨터를 선물 받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컴퓨터로 공부하고 싶어요”

서울 중구의 모 중학교 3학년인 지원이는 수학과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 EBS 인터넷 강의라도 열심히 들어 모자란 실력을 보충해야 하지만 컴퓨터가 없어서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포토샵’도 더 배워보고 싶다. 하지만 학교 수업 외에는 포토샵 프로그램을 다뤄볼 수 있는 곳이 없다. 31일 만난 지원이는 “컴퓨터가 놀이기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컴퓨터가 생기면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학원을 다닐 형편도 아니다. 지원이가 여섯 살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하면서 그 뒤로 엄마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언니와 줄곧 셋이 살았다.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하며 남매를 키우던 아버지는 2008년 간경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3개월을 못 넘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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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결국 일손을 놨다. 언니와 지원이가 일을 하며 아버지의 병 수발을 해야 했다. 언니는 옷가게 종업원으로, 지원이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시간당 4000여 원을 받으며 일하면 한 달에 60만∼70만 원이 생겼다. 이마저도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로 쓰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다행히 아버지의 병세는 더 나빠지지 않았다. 지원이는 힘들게 번 돈으로 간간이 저축도 시작했다. 그러나 컴퓨터를 살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컴퓨터를 살 돈이 있으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지원표 계란찜’을 수백 개는 족히 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PC 보유율 81%… 일반 가정 100%와 차이 많아
연말까지 500∼700대 전달 ‘학습 향상’ 돕기로

○ 사랑의 PC 보내기 운동


지원이도 이제 집에서 메신저를 할 수 있게 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한국IT복지진흥원, 서울시교육청, 동아일보사가 공동으로 벌이는 ‘사랑의 PC 보내기 운동’ 첫 대상자로 지원이가 선정된 것. 지원이는 31일 오후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과 이명희 서울시교육청 장학사에게서 깔끔하게 수리된 펜티엄급 PC를 받았다. 헤어디자이너가 꿈인 지원이는 “인터넷으로 유명 스타일리스트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사랑의 PC 보내기 운동’은 서울변호사회와 서울시교육청, 동아일보사가 지난해 2월부터 저소득층 자녀에게 일대일 지원과 멘터링을 하는 ‘변호사님과 친구됐어요’ 프로그램에 IT복지진흥원이 가세하면서 이뤄졌다. IT복지진흥원은 버려지거나 기부받은 중고 컴퓨터를 수리해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나눠주는 사업을 펼쳐 왔다. 일반 가정의 PC 보급률이 거의 100%인 반면 저소득층 학생들의 PC 보유율은 81% 정도로 ‘정보 격차(digital divide)’가 심해지고 있다.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일대일 결연을 통해 후원하는 장학생에게 PC를 우선 지원한다. 저소득층 학생 가운데 컴퓨터 보급이 절실한 학생들을 서울시교육청이 선발해 이달부터 올해 말까지 500∼700대를 지원한다. e러닝과 인터넷통신비는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한다.

이를 위해 서울변호사회와 IT복지진흥원, 서울시교육청, 동아일보사는 31일 오후 2시 서울시교육청 회의실에서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사랑의 PC 보내기’ 기증행사를 위한 협약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현 회장은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이 건전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정일섭 IT복지진흥원장은 “정보화의 혜택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PC를 기증하는 것은 정보 격차 해소와 사회 통합, 디지털 평등사회를 구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PC는 우리 아이들에게 정보의 통로이고 오락의 장, 학습의 장, 세상에 자기를 표현하는 언론의 장”이라며 “이 사업이 PC를 갖지 못한 학생들이 세계로 가는 창(窓)을 활짝 열어젖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변호사회와 IT복지진흥원은 동아일보가 준비 중인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면 이 사업을 신문과 방송이 융합된 크로스미디어 형태로 국내는 물론이고 저개발국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두 기관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를 동아일보와 각각 체결했다. 컴퓨터를 기증하고 싶은 개인이나 기업은 한국IT복지진흥원(www.bokjinara.or.kr·02-2015-3500)으로 연락하면 된다. 컴퓨터를 기증하면 산정 액수에 해당하는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해 준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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