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 자랑스러운 아버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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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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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 아픔 겪은 21명, 22km 야간산행하며 재기 결의

“채무 상환 힘들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아”… 등산 통해 각오 다져

무박 2일 야간산행에 나선 금융채무불이행자와 신용회복위원회 직원들이 12일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서 재기의 의지를 다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제공 신용회복위원회
무박 2일 야간산행에 나선 금융채무불이행자와 신용회복위원회 직원들이 12일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서 재기의 의지를 다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제공 신용회복위원회
“야간산행은 처음인데…. 등산도 빚을 갚는 것만큼 힘드네요.”

12일 오전 3시 30분 소백산 천문대 인근 등산로. 헤드랜턴의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산을 오르던 최경환 씨(33)가 중얼거렸다. 구름 때문에 별빛도 없이 컴컴한 등산로는 비가 내려 질척거리기까지 했다.

최 씨는 이날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와 신용회복위원회 임직원이 함께한 무박 2일 야간등산에 참여했다. 채무조정을 받아 빚을 갚고 있거나 최근 채무조정을 끝낸 21명이 재기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22km 산행에 나섰다.

오전 2시에 출발해 제2연화봉까지 약 1시간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순탄한 길이었다. 최 씨는 이벤트 회사를 차린 뒤 2002년 월드컵 특수를 누리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행사를 열기만 하면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재미있어서 계속 사업을 확장했다”고 말했다.

평탄한 길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고 금세 빗줄기가 굵어졌다.

최 씨가 몰락한 것도 순식간이었다. 2003년 거래처가 부도를 내면서 직원 급여를 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신용대출을 받다 보니 4000만 원의 빚을 져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최 씨는 “정수기 영업을 시작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독촉전화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최 씨는 2004년 신복위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신복위는 이자를 탕감하고 원금 3496만 원을 5년 반 동안 나눠 갚도록 했다.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오전 5시에 도서관에 가 담당 분야를 공부했고 밤늦도록 고객을 만났다. 지난해 5월 예정보다 1년 6개월 빨리 빚을 다 갚았다. 그는 “채무조정 기간에 아내를 만나 결혼했는데 차마 신용불량자라는 말을 못했다”며 “빚 상환을 끝낼 무렵 말했더니 집사람이 ‘왜 말 안 했어. 말했어도 당신과 결혼했을 텐데’라고 해 같이 울었다”고 말했다.

일행은 산에 오른 지 7시간 만에 비로봉(1439m)에 도착했다. 구름 때문에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지지 않은 철쭉이 이들을 맞았다. 참가자들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최 씨는 “빚을 갚는 것도, 등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노력해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정상을 밟은 뒤 졸음과 싸우며 내려온 일행은 인근 식당에서 조촐한 뒤풀이를 열고 각자의 사연을 나눴다. 참가자들은 자녀가 힘들어할 때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열 씨(43)는 “빚에 쫓기던 시절 아들이 ‘아빠가 감옥에 가야 한다는 전화가 매일 온다. 전화 좀 안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가슴이 찢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그때를 생각하며 빚을 갚다 보니 채무조정을 받은 후 5년 넘게 한 번도 밀린 적이 없다”며 “등산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아 상환기간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표 신복위 위원장은 “이들이 파산을 신청하는 대신 책임지고 빚을 갚는 쪽을 선택한 만큼 취업 알선, 소액대출 지원을 통해 하루빨리 신용을 회복할 수 있게 돕겠다”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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