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앞 식당 父子17년간 代이어 기부

  • 입력 2005년 11월 2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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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씨(오른쪽)가 지난달 25일 연세대 박영렬 대외협력처장에게 도서 구입비 500만 원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성규 씨(오른쪽)가 지난달 25일 연세대 박영렬 대외협력처장에게 도서 구입비 500만 원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밥값을 책값으로 돌려드려요.”

서울 연세대 앞에서 숯불고기 전문점인 ‘만미집’을 운영하고 있는 황성규(47) 씨는 요즘 기분이 좋다.

며칠 전 30대 중반의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식당에 와 “아빠가 이분이 학교에 기부하신 책으로 공부했어”라면서 감사함을 표시했기 때문.

황 씨는 1992년 아버지에게서 식당을 물려받으면서 ‘소중한 약속’도 물려받았다. 아버지 황채봉(72) 씨는 “내 식당을 찾아주는 학생들이 고맙다”면서 1988년부터 연세대에 도서 구입비를 기부했다. 책을 기부하면 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그는 아들에게 이 일을 계속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아들 황 씨는 “아버지는 인건비가 부족해 자식들에게 음식 서빙을 부탁하면서도 매년 지원금을 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황 씨는 아버지의 기부금보다 200만 원이 많은 500만 원을 매년 연세대에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황 씨 부자가 연세대에 전달한 돈은 모두 8000여만 원.

1988년 당시 연세대 측은 “학생들 데모로 깨진 장독대 값을 받으러 왔다”는 식당 주인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황채봉 씨의 기부에 반신반의했고 주변 상인들은 “장사 수완이 아니냐”며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매년 빠짐없이 기부하는 모습에 주변 상인들도 시각이 달라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 신촌 지역 상인들은 1990년대 초 연세대생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황 씨는 “불경기 탓에 매출은 별 볼일이 없지만 가끔씩 고맙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식당 문을 닫는 날까지 기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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