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양손 잃은 김영갑씨 보스턴마라톤 완주

  • 입력 2004년 4월 20일 19시 05분


“마라톤은 제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줬습니다.”

20일 열린 제108회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한 김영갑씨(31·구미마라톤클럽). 기록은 자신의 평소 기록보다 한 시간 가까이 뒤질 만큼 저조했지만 그의 얼굴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또 한번 ‘존재의 의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달리면 즐거워요. 또 세상이 나에게 준 고통도 잊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같이 뛰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김씨는 양 팔이 팔꿈치 아래가 없는 장애인. 삼성코닝 변전실에 근무하던 5년 전 작업 중 감전사고 때문이었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할 만큼 자포자기했던 그가 새 인생을 되찾은 것은 2001년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땀 흘리며 고독을 떨쳐냈고 완주와 기록 단축 속에서 크나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김씨는 이번까지 풀코스를 21번 완주했다. 최고기록이 2시간43분으로 국내 마스터스 중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실력.

“보스턴에 와 보니 마라톤이 레이스가 아니라 축제예요. 그동안 너무 기록만을 위해 달린 것 같아요. 연도에 선 시민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뛰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이날 기록이 나빴던 것은 더운 날씨와 난코스 때문. 하지만 기록이 문제가 아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내게 하이파이브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시민들을 보며 어떤 레이스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정과 희망을 체험했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없는 단어는 ‘포기’인 것 같습니다. 다음엔 런던마라톤에서 뛸 겁니다. 그 다음엔 로테르담을 뛰고요. 새로운 목표를 정해 차근차근 정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삶 아닐까요. 여러분 힘내세요.”

보스턴=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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