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목사 “월드컵 중계마이크 한번 잡아봤으면…”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11분


“네, 이회택 선수 볼 잡았습니다. 거칠게 태클하는 상대 수비를 1명 제치고, 2명 제치고, 중거리 강 슈∼웃. 고올∼인. 골인입니다.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드디어 한국 대표팀이 역전골을 넣었습니다.”

TV가 거의 보급되지 않았던 60년대 라디오를 통해 가슴 졸이며 스포츠 중계방송을 들었던 40대 이상 세대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한국팀의 경기모습을 박진감 넘치게 전하던 전 KBS 아나운서 이광재(李光宰)씨를 잊지 못한다.

▼美로 건너가 北과 방송戰▼

‘아날로그 시대’의 국민적 스타였던 이씨는 지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온성 중앙교회 목사로 목회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아나운서로 한창 잘 나가던 1970년 홀연 한국을 떠났다. 왜 그랬던 것일까. 이씨는 22일 전화인터뷰에서 “냉전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KBS 직원이 공무원이었던 70년 정부로부터 갑자기 워싱턴에 있는 ‘미국의 방송(VOA)’사에 가 근무하라는 명을 받았지요.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간판급 아나운서들이 모스크바와 베이징(北京) 등에서 방송 선전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에 맞서기 위해선 이광재 아나운서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국무부가 저를 지목해서 보내줄 것을 요청해 왔다는 거예요.”

이씨는 VOA에서 2년반을 근무하고서도 귀국할 수 없었다. 이번엔 북한이 뉴욕 유엔대표부를 통해 재미교포를 상대로 총련과 비슷한 친북세력을 만들 것이 우려되는 만큼 뉴욕으로 가 라디오 방송사를 세우고 교민을 상대로 방송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 그는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에서 잇달아 방송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박동선씨의 미 의회 로비스캔들이 터졌고, 저도 방송사 설립과정에서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조사대상이 됐어요. 참 힘들었죠. 그때 만난 한 목사님의 권유로 기독교를 믿게 된 거지요.”

▼박동선게이트로 고난 겪어▼

이씨는 그후 84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한인 기독교방송의 국장으로 방송 선교에 종사하다 200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요즘도 로마올림픽, 아시아경기, 킹스컵 축구대회에서 주요 경기를 중계하던 때가 그립다고 말한 그는 “한국 축구팀이 꼭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도록 매일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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