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골드러시 시대, 월가에 ‘곡괭이’를 팔다… 독점 정보 유통망 설계[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9일 23시 00분


블룸버그LP 세운 마이클 블룸버그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5월 6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7,000 선을 넘어섰다. 올해 2월 6,000 선을 돌파한 지 불과 70여 일 만이다. 시가총액은 6000조 원을 넘어 한국 증시는 시총 기준 세계 최상위권으로 급부상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같은 우량주들의 주가가 수 배씩 뛰며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광경은 가히 ‘금융 골드러시’라 할 만하다. 사람들의 모든 관심사는 오직 하나,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정보에 쏠려 있다.》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진짜 승자는 금을 캔 광부가 아니었다. 승자는 그들에게 청바지와 곡괭이를 판 리바이스와 도구업체였다. 오늘날 인공지능(AI) 열풍의 최대 수혜자 역시 알고리즘을 만든 기업들이 아니다. 그 알고리즘을 구동할 칩을 설계한 엔비디아와 그것을 물리적으로 찍어내는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인프라 공급자들이다. 광풍이 거세질수록 무대 뒤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 기업이 있다는 법칙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주식 광풍 속 무대 뒤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금융정보의 제국, 블룸버그LP다.

금융 시장에서 정보는 곧 권력이다. 수만 명의 트레이더와 펀드매니저들이 0.1초의 찰나에 수십억 달러를 움직이는 월가에서 그들의 책상 위에 놓인 투박한 전용 단말기 ‘블룸버그 터미널’은 단순한 기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 금융의 혈관을 흐르는 데이터를 독점하며 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그 정보를 지배하며 거대한 부를 쌓아 올린 인물이 있다. 블룸버그LP의 창업자 마이클 블룸버그(84)다.

39세에 해고 통보, 인생의 전환점

블룸버그는 1942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인근 메드퍼드에서 자랐다. 그는 유제품 회사 경리사원의 아들로 결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법을 배웠다. 존스홉킨스대 전기공학과 재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주차장 관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66년 월가의 투자은행 살로먼브러더스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금융인의 길을 걷게 된다.

살로먼에서의 15년은 그에게 금융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시간이었다. 블룸버그는 단순히 주식을 사고파는 트레이더를 넘어 정보가 어떻게 흐르고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주목했다. 파트너 자리까지 올라 정보기술 및 운영 부문을 총괄하게 된 그는 당시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금융데이터 관리의 비효율성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하지만 1981년 살로먼이 원자재 거래 기업 피브로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해고를 통보받는다. 39세의 나이에 15년 넘게 몸담은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했을 순간, 그는 1000만 달러의 퇴직금을 손에 쥐고 다음 날 아침 곧바로 자신의 오랜 문제의식을 사업화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월가 전문가들이 실시간으로 시장데이터를 분석하고 계산할 수 있는 도구가 절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동료 세 명과 이노베이티브 마켓 시스템스(IMS)를 설립했다. 이것이 훗날 블룸버그LP의 시초다. 그는 마케팅이나 화려한 수사 대신 금융인들이 0.1초라도 빠르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돕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블룸버그의 천재성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보를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판을 설계했다는 데 있다. 그는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독점적 구조를 구축하며 비즈니스의 성공 공식을 써 내려 갔다.

시장의 눈과 귀를 장악하다

블룸버그 터미널이 월가의 ‘곡괭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이곳에서만 흐르는 독점적 정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기사를 통해 정제된 정보를 접할 때, 블룸버그 사용자들은 시장의 원석에 직접 접근한다.

예를 들어 채권시장은 주식처럼 공개된 거래소가 아닌 장외(OTC)에서 개별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블룸버그LP는 전 세계 수만 개 금융기관으로부터 실시간 호가와 거래 데이터를 수집해 오직 터미널 안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통합가격을 제공한다. 또한 유조선의 실시간 위치와 경로를 추적하는 공급망 데이터나 기업 내부의 복잡한 지배구조 네트워크 등 전문가들이 전략을 짤 때 필요한 심층 데이터를 독점 제공한다. 결국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준다는 약속이 금융인들을 이 투박한 기계 앞에 묶어 두는 강력한 자물쇠가 됐다.

이 플랫폼의 진정한 위력은 시간이 갈수록 독점이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에 있다. 더 많은 트레이더와 펀드매니저가 블룸버그 터미널을 사용할수록, 그들이 발생시키는 데이터 자체가 다시 블룸버그의 자산이 된다.

수만 명의 전문가들이 전용 메신저인 ‘인스턴트 블룸버그’를 통해 나누는 대화와 거래 문의는 그 자체로 시장의 심리를 읽는 거대한 데이터가 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정보를 검색하고 사용할수록 블룸버그는 시장의 흐름을 더 정확히 파악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더 정교한 분석 기능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정보의 가치가 높아지고, 그 가치가 다시 새로운 사용자를 불러들이는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면서 블룸버그는 대체 불가능한 권력으로 성장했다. 현재 전 세계 32만 명 이상의 금융전문가가 연간 수만 달러를 지불하며 이 단말기를 사용한다.

‘블룸버그GPT’로 정보 해석에까지

블룸버그는 수십 년간 쌓아온 이 방대한 독점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2023년 발표한 금융 특화 대규모언어모델 ‘블룸버그GPT’는 40년간 축적된 블룸버그의 금융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금융 영역의 자연어 처리 과제에서 동급 모델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보인다. 블룸버그GPT는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업의 실적 발표 기록을 단 몇 초 만에 분석해 경영진의 뉘앙스 변화를 감지해 낸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간 삼성전자의 HBM 공정 효율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부정적 의견 변화를 요약해 줘”라고 명령하면, 과거의 모든 리포트와 실시간 뉴스를 결합해 즉각적인 투자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또는 복잡한 규제 문서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기업의 잠재적 리스크를 사전에 경고하기도 한다. 정보의 양을 넘어 정보의 해석 능력까지 독점하겠다는 설계자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의 독점 데이터 구조화하라

블룸버그 제국은 한국 기업들에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첫째, 정보가 곧 본질인 시대에 독점적 데이터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이 곧 미래의 생존력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공정의 미세한 떨림, 생산 라인의 효율, 소재의 물리적 변화 등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제조 현장의 원천 정보를 모아야 한다. 이를 고도화된 ‘피지컬 AI’로 연결한다면 한국은 가상세계의 정보를 넘어 현실 세계의 물리적 지능을 선도하는 강력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둘째, 내수용 우물을 파는 단계를 넘어 글로벌 기업들을 우리 생태계에 가두는 판을 설계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외국에서 검증된 모델을 들여와 한국 시장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블룸버그 터미널이 전 세계 금융인을 묶었듯, 이제는 외국 기업들이 우리 생태계 없이는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없는 글로벌 플랫폼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로컬과 싸우지 않는다. 모든 경쟁은 세계 또는 공동체 단위로 확장될 것이고, 우리는 그 경쟁에서 앞서 나가야 한다.



#코스피#시가총액#블룸버그LP#블룸버그GPT#블룸버그 터미널#인공지능#마이클 블룸버그#한국 제조업#독점 데이터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