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패션 기업이 아니다”… 느낌 버리고, 기술-표준으로 판 바꿔[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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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우리는 세계를 바꾼 기업가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미국을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같은 이름은 익숙하다. 한국에서도 재계 총수와 혁신 기업가들의 성공 스토리는 끊임없이 소비된다. 그러나 이웃 일본은 다르다. 일본 상품은 익숙하지만, 그 뒤에 선 기업가의 이름은 잘 모른다. 세계 4위권 경제 규모를 유지하며 제조업과 소비재 산업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 중심 인물들은 조용하다.》
그중 한 사람이 일본 패스트 리테일링 창업자 겸 회장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77)다. 우리는 이미 그의 옷을 입고 있을지 모른다. 사계절 기본 티셔츠와 셔츠, 가벼운 점퍼까지, 편하고 부담 없어 무심히 고르는 옷, 바로 유니클로다. 하지만 그는 그저 의류 브랜드를 만든 인물이 아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패션 산업의 방식을 다시 설계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입는 기본 아이템 뒤에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
원치 않는 가업 승계 뒤 재창업
야나이는 1949년 일본 야마구치현의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기반의 남성복 매장 ‘오고리 상사’를 운영했다. 그는 훗날 “나는 사업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와세다대 졸업 후 유통업체에서 일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의 가게로 돌아왔다. 원치 않았던 가업 승계였다.
아버지는 그를 매장의 맨 아래 직원으로 배치했다. 청소와 진열, 재고 정리를 맡으며 그는 깨달았다. 일본 특유의 고객 응대와 맞춤형 판매에 의존하는 지역 양복점 모델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전환점은 1980년대 초 미국 출장에서 찾아왔다. 그는 대형창고형 캐주얼 의류 매장에서 값싸고 단순한 옷이 대량으로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패션이라기보다 상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옷을 이렇게 팔 수도 있구나.” 그는 표준화와 대량화가 미래의 승부처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1984년 히로시마에 유니클로의 전신(Unique Clothing Warehouse)이 문을 열었다. 유니클로는 원래 ‘Uni-Clo’였으나, 1988년 홍콩 합작 법인 설립 과정에서 행정 실수로 ‘C’가 ‘Q’로 잘못 기재돼 ‘UNIQLO’가 됐다. 야나이는 오히려 그 철자가 더 독창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는 매장을 표준화하고 제품 수를 과감히 줄여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췄다. 1990년대 중반 플리스 열풍을 일으키며 유니클로는 전국구 브랜드로 도약했다.
업계 상식 거부한 유니클로
야나이의 성공 전략은 패션 산업의 기존 상식을 거부하는 데 있다. 그는 패션이 유행 산업이라는 믿음, 디자이너의 감각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신념, 계절마다 완전히 다른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전제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첫째는 소재 중심의 연구개발(R&D)이다. 유니클로는 패션 기업이 아니라 소재 기업처럼 움직인다. 일본의 첨단 소재 기업 도레이와의 장기 협업이 이를 상징한다. 히트텍, 에어리즘, 울트라라이트다운은 디자이너의 스케치가 아니라 연구실 실험에서 탄생했다. 대부분의 패션 기업이 디자인 스튜디오를 중심에 두는 반면에 유니클로는 소재 개발과 공정 설계에 자원을 집중한다.
이는 패션 기업이 수요를 예측하려 할 때 유니클로는 수요를 구조화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겨울의 따뜻함과 여름의 쾌적함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유행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야나이는 이 변하지 않는 본질적 수요에 집중했다. 그 결과 유행의 변동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제품 구성을 단순화해 대량 생산에 따른 원가 절감과 재고 리스크 감소를 동시에 이뤘다. 감성 산업에 엔지니어링 사고를 도입한 것이다.
둘째는 ‘비(非)패션’ 전략을 통한 리스크 관리다. 야나이는 “우리는 패션 기업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였다.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가 ‘패스트 패션’을 내세워 매주 새로운 트렌드를 쏟아낼 때, 유니클로는 몇 년간 같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한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패션 산업 본질의 변동성을 통제하는 리스크 관리 방식의 차이다.
트렌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흰 셔츠나 검은 니트 같은 베이직 아이템은 크게 유행을 타지 않는다. 덕분에 유니클로는 전 연령층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안정적인 시장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옷은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 주역은 사람이다”란 야나이의 말은 소비자의 일상을 지지하겠다는 치밀한 전략이기도 하다.
다른 패션 기업들이 화려한 차별화를 외치며 트렌드를 좇을 때, 유니클로는 표준화를 택했다. 결국 야나이는 디자인 경쟁 대신 공정 경쟁을 선택했다. 그렇게 그는 패션을 감성의 영역에서 운영 전략의 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추격을 넘어선 공식의 창조
야나이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본질적 질문에 이르게 된다. 패션 산업은 과연 샤넬이나 에르메스처럼 수십 년 혹은 한 세기에 걸친 시간의 축적과 감성의 연마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일까. 분명 그 길은 가치 있지만 험난하다. 그러나 자라가 ‘속도’로, 유니클로가 ‘기술과 표준’으로 산업을 재설계해 자신만의 영토를 구축한 사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이미 K팝과 K무비, K뷰티를 통해 전 세계가 공유하는 거대한 문화 플랫폼이 됐다. 하지만 이 흐름 속에서도 아직 독자적 깃발을 세우지 못한 분야가 있다. 필자는 그것이 K패션이라고 본다. 국내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대개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유니클로나 자라의 공식을 참고해 내수 시장에서 성장했으나 해외에서 파급력이 약한 경우, 혹은 럭셔리를 지향하지만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의 오랜 상징 자산을 넘어서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경우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왜 우리는 늘 기존 공식을 따라잡는 방식으로만 패션을 고민하는가. 왜 자라의 속도를 모방하거나 유니클로의 표준화를 흉내 내며 유럽 럭셔리 감성을 뒤쫓는 데 급급하는가. 기존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구조에서는 브랜드를 쌓고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굳이 그들이 만든 경기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경주할 필요가 있을까.
K팝은 서구 팝 산업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체계적인 연습생 시스템과 정교한 프로듀싱 구조, 강력한 글로벌 팬덤 플랫폼이라는 우리만의 공식을 만들었다. K뷰티 역시 프랑스식 럭셔리를 복제하기보다 성분 중심의 투명성과 빠른 제품 사이클이라는 실용적 전략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K패션도 이제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과 빠른 속도의 트렌드 확산력, 고도화된 디지털 커머스 인프라와 콘텐츠 제작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를 선도하려면 판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
야나이의 유니클로는 패션을 스타일이 아닌 기능으로 재정의했다. 자라는 패션을 예측이 아닌 속도의 산업으로 바꿨다. 우리는 패션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패션을 데이터 기반의 실시간 커뮤니티 산업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K콘텐츠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산업으로 확장할 것인가. 혹은 지속 가능성과 고도의 기술력을 결합한 또 다른 표준을 제시할 것인가.
지금 K패션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산업의 구조를 뒤흔들 또 하나의 공식이다. 따라가는 산업이 아닌 정의하는 산업, 모방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브랜드가 필요하다. K팝과 K뷰티에서 이미 증명했듯, 이제 패션에서도 우리 방식으로 진지한 반전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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