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설]신뢰 잃은 중고시장… 실효성 있는 안전망 마련해야

  • 동아일보

이설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이설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내일 지방에 내려가서 직거래는 힘들어요. 절반만 선입금해 주시면 바로 퀵으로 보낼게요.”

평소 눈여겨보던 명품 브랜드 목걸이가 시세 대비 반값에 올라왔다. 누가 먼저 낚아챌까 봐 서둘러 125만 원을 입금했다. 판매자는 곧바로 퀵서비스 송장 사진을 보내왔다. 한데 반나절이 넘도록 물건이 오지 않았다. 채팅창을 확인하니 ‘탈퇴한 사용자’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최근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사기를 당한 A 씨의 사연이다.

중고거래 시장의 몸집이 커지면서 사기 피해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 추산 사기 피해액은 2022년 1131억 원에서 지난해 334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귀금속, 전자제품 같은 고가품은 물론 과일즙, 그릇 세트 같은 생필품까지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말도 안 되는 헐값에 혹했다’며 스스로를 탓하곤 한다. 하지만 이를 오롯이 개인의 불찰로 돌리기엔 수법이 교묘하고 치밀하다. 선입금 유도 후 잠적, 가짜 안전결제 링크로 유도, 인공지능(AI) 조작 사진 활용, 제3자 사기 등이 횡행하며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에 플랫폼들은 안전망을 강화하고 있다. ‘번개장터’는 2024년 전 품목에 안전결제(배송 확인 후 결제 대금 송금)를 의무화하며 사기 신고 건수를 95% 가까이 줄였다. ‘중고나라’는 지난해 안심결제를 통한 거래에서 사기 피해 발생 시 최대 100만 원까지 보상하는 안심보상제를 도입했다.

이웃 간 직거래 중심인 ‘당근’은 상대적으로 안심결제 이용률이 낮다. 대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반 동네인증제와 ‘매너온도(평점제)’로 불공정 거래 가능성을 낮춘다. 문제는 계정 탈취 범죄는 이 모두를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최근 용돈이 필요한 중고교생들의 계정 수백 개를 사들여 중고거래에 활용한 범죄조직이 검거되기도 했다. A 씨가 거래한 계정도 기존 거래 내역과 매너온도는 문제가 없었다.

당근은 계정 대여 행위의 불법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AI가 대화 패턴과 계정 이력 등을 분석해 위험을 감지하는 ‘AI 에이전트’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당근 사용자 B 씨는 “매일같이 도용 사진을 바꿔가며 고가품을 올리는 사기꾼이 있다. 발견 즉시 신고를 해도 게시글 차단 전 거래가 성사돼 계속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국가는 플랫폼에 강력한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영국 온라인안전법(OSA)과 유럽연합(EU) 디지털서비스법(DSA)은 사기 게시물 방치 시 각각 세계 매출액의 10%, 6%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기업들 스스로 기술 고도화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유럽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빈티드’, ‘이베이’ 등은 판매자가 사진을 올리는 순간 AI가 기존에 등록된 방대한 데이터와 대조한다. 물건을 한꺼번에 등록하거나 시세보다 현저히 저렴하게 올려도 이상 징후로 본다.

금융 안전망도 촘촘하다. 영국은 2020년 송금 단계에서 수취인 이름과 계좌번호를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시스템(CoP)을 의무화했다. 2024년부터는 사기 피해 시 은행이 환불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고 있다.

개별 이용자의 자구책으로는 사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 플랫폼의 관리 의무를 구체화하고 금융권의 책임을 확대하는 등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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