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정치학자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트럼프, 김정은 회담시 核 인정가능… 韓日, 협력해 北核 용인 막아야
中日 갈등 속 韓 역할 중요
韓 국제사회 ‘새우’ 아닌 ‘돌고래’… 다극적-글로벌 시각서 위치 고민해야
韓 정치 체제 변화 필요… 정치 무관심, 본인 삶 지킬 수 없어”
지난해 12월 13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만난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그는 한국의 국력, 군사력 등이 상승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며 “한국 젊은이들이 이에 자부심을 가지고 미래를 고민해 달라”고 당부했다.
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한국과 일본의 새 정상이 ‘셔틀 외교’를 지속하고 있는 것 자체가 성과다. 이제는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할 때다.”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 2세 정치학자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76)는 취임 전 상대국을 향해 강경 발언을 했던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집권 후엔 양국 협력을 강조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달 중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일각에선 올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한일 간 협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 교수는 “한일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확인하고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는 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 국적자로서 처음 도쿄대 정교수가 됐다. 일본에서 100만 부가 팔린 ‘고민하는 힘’ 등 여러 베스트셀러도 출간했다. 1972년 한국을 방문한 뒤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라는 일본 이름 대신 강상중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며 정치학자, 사회비평가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2026년을 앞둔 지난해 12월 13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한일 관계, 동북아 정세, 한국 사회 등 다양한 현안을 넘나들며 약 90분간 폭넓은 식견을 보여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일 ‘셔틀 외교’가 유지되고 있다.
“현재 중국과 일본 관계에 긴장이 매우 고조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란 불확실성이 큰 요소도 있다. 이런 요인들이 한국과 일본을 서로 묶어두는 강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셔틀 외교를 좀 더 발전시키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한일이 셔틀 외교 와중에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암묵적으로 합의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일종의 ‘레드라인’을 서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금지 같은 게 그 예다.”
―2026년 1월 한일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 두 정상이 무엇을 해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다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건 향후 5년 후, 10년 후 얘기다. 미국과 북한이 ‘북핵 동결’에 합의하면 한일 양국에선 당장 핵무기 보유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핵 개발의 도미노 현상이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미국, 중국, 북한 사이의 합의다. 한국을 제외한 이들 세 나라가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기 전에 사전협의를 하고 필요한 것을 미국에 강하게 요청하고, 설득하고, 때론 압박해야 한다. 미국을 향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말고 완전한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한일이 반드시 협력해야 할 중요 과제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는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까지는 성공이라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가 문제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보면 미국은 북중미에 강하게 군사 개입을 하려 한다. 반면 아시아 등에 대한 개입은 자제하자는 쪽이다. 미국이 중국을 경계하는 제1도련선(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한국과 일본에 지키라고 하는 의도도 읽힌다. 미국이 한국에 핵잠 도입을 허용한 것도 한국은 부정하고 있지만, 역시 한국의 방어 범위를 넓히고 싶어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에 ‘실용 외교’는 쉽지 않다. 항상 ‘차선책(Second Best)’ ‘차차선책(Third Best)’을 염두에 두고 펼쳐야 한다.”
강 교수는 2020년 ‘조선반도(한반도)와 일본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는 ‘지일(知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일’을 하고 있다고 보나.
“문재인 정권의 한계 위에서 이 정권의 ‘실용 외교’가 성립하고 있다. 문 정권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연장선에 있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이념 외교’ 성향이 너무 강했다. 과거 문 전 대통령이 대선에 나섰을 때 1시간 정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일본에 대한 그의 지식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반면 이 대통령은 과거 몇 차례 일본을 방문한 경험을 얘기했다. 또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주변 핵심 참모들로부터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얘기를 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일본과의 역사 갈등은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고, 안보는 생존 문제다. 둘 중 어느 쪽이 우선이냐고 하면 역시 생존과 직결된 안보다.”
―한일, 한중 정상회담이 함께 거론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한국만큼 중요한 카드는 없다. 두 나라 모두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광복 후 중국과 일본이 이처럼 동시에 한국을 향해 러브콜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한국이 계속 중립적인 입장만으로 버틸 수 있느냐, 이건 상당히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균형자로서 얼마나 영리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국의 지향점을 좀 더 설명해 달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새우’가 아니고, ‘돌고래’ 정도는 된다. 돌고래는 고래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고래들 사이를 요리조리 잘 빠져나갈 수 있다. 한국은 그만한 힘이 있다. 최근 군사력 순위를 봐도, 한국은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이지만 국방력을 나란히 하거나 일부 앞섰다는 평가도 있다. ‘돌고래’가 된 한국은 그에 걸맞은 움직임을 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군국주의 역사가 없어서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주요 7개국(G7) 체제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다극적이고 글로벌한 시각에서 한국의 위치를 고민해야 한다.” ―중일 갈등 등에도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이 70% 안팎으로 높다.
“일본의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은 이런 지지율을 의문스럽고 신기하게 보고 있다. 다만 첫 여성 총리란 점, 세습 정치인이 아니고 스스로 노력해서 총리가 됐다는 점, 열심히 일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자신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점도 대중에게 먹히고 있다. 문제는 경제다. 일본의 재정 위기가 수습되지 않고 있다. 최악의 경우 기준금리는 올렸는데 엔화는 오르지 않고 떨어질 수 있다. 잘못하면 일본 경제가 상당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중일 갈등의 해법은 무엇일까.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은 큰 사안이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만의 주권은 일본이 포기했으며 중국에 귀속됐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 1972년 중일 공동성명 당시 중국은 전쟁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고, 전쟁을 주도한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구별해야 한다는 논리를 취했다. 군국주의자와 전쟁 지도자들은 처벌 대상이지만 일본 국민은 오히려 피해자라는 입장이었다. 그런 전제 위에서 대만은 중국에 귀속된다는 점을 일본이 이해하는 대신 일본에 전후 배상을 면제해준 거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이런 전제를 뒤흔드는 것이다. 해당 발언 철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중국과의 긴장이 이어질 수 있다.”
강 교수는 2024년 12월 터진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인한 한국 사회의 혼란과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또 한국 정치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둘러싼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이 쌓아온 민주 질서, 민주화 역사, 국제사회의 신뢰를 짓밟는 쿠데타였다. 쿠데타 지지 세력은 엄정하게 처벌하되, 동시에 어떻게 사회적 분열을 최소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정치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선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들 하지만 실제론 미국보다는 프랑스식 대통령제에 가깝다. 미국에는 총리가 없지만 프랑스에는 총리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이라고 해서 야당 당수가 총리가 되고, 여당이 대통령을 맡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한국도 이를 주목해야 한다. 이 실험을 하면 한국에도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안정적인 핵심 축이 형성될 거라고 본다. 필요하다면 국민투표를 통해 독일식 모델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즉, 대통령은 국가원수로 두되 실질 권력은 내각에 두는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거다. 권력과 에너지를 여러 국내 문제에 쓸 수 있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오랫동안 한국을 관찰해 왔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나.
“한국의 호주제가 2005년 폐지됐다. 호적이 있었기에 차별도 존재했다. 호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사람의 출신과 배경이 다 드러났으니까. 이제 아시아 주요국 중 호적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인 것으로 안다. 중국, 일본, 대만은 아직 호주제가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가족 제도, 공동체 인식, 전통적인 가치 등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을 먼저 접하고, 선도해 나가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렇기에 한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이 이 정도 위치, 위상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꼭 인식해 줬으면 한다.”
―2009년 출간한 ‘고민하는 힘’은 한일 양국에서 베스트셀러였다. 지금 한국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2024년 한국의 쿠데타 소동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결국 자기 삶도 지킬 수 없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 한국 젊은 세대의 미래가 밝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은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그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라.”
강상중 명예교수
△1950년 일본 구마모토 출생 △1974년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졸업 △1979년 와세다대 정치학 박사 수료 △1979년 독일 에를랑겐대 유학 △1985년 국제기독교대 조교수 △1998년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 조교수 △2004년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학제정보학부 교수 △2014년 세이가쿠인대 학장 △2016년 구마모토 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 △2021년 간세이가쿠인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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