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사용 문턱이 낮아지면서 교육과 산업 현장에서는 “분야 전문가보다 AI 전문가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는 창조와 혁신의 주체를 혼동한 인식이다. AI는 빠르고 정확한 도구로서 인간의 능력을 확장할 뿐,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혁신기술을 만들어 내는 경쟁력은 언제나 각 분야 전문가의 깊이 있는 이해와 문제 정의 능력에서 나온다.
정부와 산업계는 디지털 전환과 AI 도입을 혁신의 상징처럼 내세우지만, 정작 “누가 판단하고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 검증 체계 없이 AI에 판단까지 맡기는 것은 효율이 아니라 ‘판단의 외주화’에 가깝다. 이는 계산기로 덧셈과 뺄셈 숙제를 푸는 아이와 다르지 않다. 답은 맞힐 수 있지만,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교육의 목적은 정답이 아니라 사고 과정에 있다. AI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 중시하는 교육은 혼란을 키울 뿐이다.
수술 로봇의 책임이 의사에게 있듯, AI가 만든 결과의 타당성 판단과 책임은 결국 전문가의 몫이다. AI가 블랙박스처럼 작동할수록 전문가는 더 중요해진다. 최근 실험과 검증 중심 연구가 다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는 생각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한 뒤 사용하는 도구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AI를 잘 쓰는 ‘AI 강국’이 아니라, AI를 도구로 통제하는 ‘AI 선진국’이다. 기술의 속도에 사고와 판단의 본질을 넘겨줄 것인지, 인간이 끝까지 책임질 것인지의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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