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프로야구 롯데 2군 감독(위쪽 사진)과 아들 김재호 프로. 원래 야구를 했던 김재호는 초등학생 때 골프로 전향했다.
롯데·KPGA 제공
이헌재 스포츠부장지난달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렉서스 마스터즈 16번홀(파3)에선 선수들이 자신이 고른 배경 음악을 틀고 입장하는 이색 이벤트가 진행됐다. 김재호(43)는 프로야구 롯데의 응원곡 ‘영광의 순간’을 선택했다. 그는 이날 노래 제목처럼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210번째 대회 출전 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역대 최고령 첫 우승 기록을 쓴 김재호는 “모두 아버지 덕분”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김재호는 우승 세리머니 때도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 뒷면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등번호 99번이 새겨져 있었다. ‘미스터 롯데’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용희 롯데 퓨처스(2군) 감독(70)이 그의 아버지다.
김 감독은 실업야구 시절 최고의 거포 중 한 명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뒤에도 팀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그해 초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고, 2년 후인 1984년 다시 한번 올스타전 MVP에 뽑혔다.
슈퍼스타였지만 후덕한 인품으로 더 유명했다. 말 많고, 탈 많은 야구계에서 물의 한번 일으키지 않고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엔 롯데, 삼성, SK에서 지휘봉을 맡길 정도로 신망이 높았다. 70세가 된 지금도 여전히 롯데 2군 감독을 지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만 그는 우승에 목말라 있다.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는 고 최동원이 혼자 4승을 거둔 1984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 올렸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건 롯데 사령탑 첫해였던 1995년이다. 두산과 치른 한국시리즈에서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다 내리 두 번을 져 준우승에 그쳤다.
아들 김재호도 비슷했다. 실력은 분명 우승권인데 마지막 날만 되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한 끝에 43세에 첫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아들의 전화를 받은 김 감독은 “수고했다”라고 짧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마음으로 가장 기뻐한 것도 김 감독이었다. 그는 “실패가 이어지면서 아들이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오랜 인내 끝에 우승을 한 만큼 앞으로도 성실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역시 다시 한번 유니폼을 입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한때 애연가였던 그는 2001년 12월 금연을 선언한 뒤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두주불사일 정도로 술도 좋아했지만 6년 전부터 아예 끊어버렸다. 요즘엔 안 좋은 음식을 멀리하고, 먹는 양도 최대한 줄이려 한다.
롯데는 올해도 7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1992년 마지막 우승 후 33년간 우승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내 역할은 1군 선수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력을 2군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롯데는 내 모든 인생이 들어있는 팀이다. 잘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의 우승에도 축배를 들지 않았던 김 감독은 “롯데가 우승하는 날 딱 세 잔만 마실 것”이라며 웃었다. 롯데가 우승하면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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