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쿠팡, 5년간 고위 공무원 44명 영입… ‘할 일’ 않고 로비 매달렸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일 23시 30분


1일 서울 중구의 한 차고지에 쿠팡 물류차량이 주차돼 있디.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일 서울 중구의 한 차고지에 쿠팡 물류차량이 주차돼 있디.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쿠팡에서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허술한 인증 관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인증 담당 직원이 내부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토큰 서명키를 퇴사 후에도 폐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업계 등에서는 쿠팡이 정작 할 일은 소홀히 하면서 대관 로비에만 매달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와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쿠팡은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44명을 영입했다. 한화 삼성 현대차 LG그룹에 이어 5번째로 많았고, 재계 2위인 SK그룹과 같은 숫자였다. 쿠팡은 올해만 18명을 채용했는데 그중 절반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었다. 5급 이하로 취업 심사 대상이 아닌 이들을 포함하면 영입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부터는 정권교체를 예상하고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을 대거 스카우트했으며, 최근에는 고용노동부에서만 8명을 데려왔다.

영입된 이들은 억대 연봉과 임원 대우를 받으며 쿠팡의 입장을 정관계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감 때 증인 출석을 막고, 질문을 사전에 입수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였다.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올해 세 차례 국회 출석 요구를 받고도 ‘해외 체류’를 이유로 불출석했는데, 이 과정에도 여야 전직 보좌관들의 역할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경영진이 대관 로비에 주력하는 동안 개인정보 유출은 반복됐다. 쿠팡에선 최근 5년 동안 4차례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 모두 외부 해킹이 아니라 시스템 오류 같은 내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쿠팡의 정보기술(IT) 투자에서 보안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7.1%에서 올해 4.6%로 오히려 줄었다. 부실했던 건 정보 보호만이 아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선 올해만 야간 근로자 4명이 사망했다. 근로자 건강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를 죽음이다. 취업규칙을 바꿔 일용직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안 줬다가 외압 의혹으로 상설 특검 수사를 앞두고 뒤늦게 지급하기도 했다. 멤버십 가격 인상 유도, 알고리즘 조작 등에 대한 조사와 재판도 진행 중이다.

고객 정보 보호, 근로자 건강 관리, 합당한 보상 등은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작은 빈틈도 있어선 안 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런 데는 소홀히 하면서 사고나 불상사가 벌어지면 정부와 정치권에 쫓아가 수습하려는 행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쿠팡이 대관 로비에 들이는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고객 정보 보호 등에 기울였다면 이번과 같은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쿠팡#개인정보 유출#인증 관리#토큰 서명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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