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난초와 빽빽한 버들, 시는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삶을 이렇게 은유한다. 이별은 길어지고 낯선 땅의 고난 또한 더해간다. 다행이라면 ‘도중에 좋은 친구를 만나’ 의기투합하며 지낸 것. 무언의 교감을 나누었으니 진실된 사귐이라 믿었을 테다. 화자는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난초와 버들이 시들듯 ‘처음의 언약’은 깨지고 만다. 그 언약의 상대가 새 친구인지 떠나온 가족인지는 모호하다. 다만, 의리가 실로 소중한 가치라는 자각은 명료해 보인다.
시는 9수 연작시의 제1수다. 시제가 ‘옛 시를 본뜨다’인데 시인은 무엇을 본뜨려 했을까. 전란에 휩싸였던 한말(漢末) 문인시의 허무주의적 정서 혹은 염량세태의 개탄일 듯하다. 이는 도연명 전원시의 느긋한 이미지와는 결이 판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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