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3월 27일 거북선, 대포를 시험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6일 23시 09분


판옥선. 서울대 규장각 제공
판옥선. 서울대 규장각 제공
이문영 역사작가
이문영 역사작가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재난이 벌어지기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음력 3월 27일. 갑자기 벼락출세해 전라좌수사에 앉은 이순신은 거북선이라는 새로운 전함의 시험에 나섰다. 맑고 바람도 없어서 새 전함을 테스트하기 좋았던 이날, 거북선에서 대포를 쏘는 훈련이 이뤄졌다.

거북선은 조선 초에도 등장한 적이 있었다. 태종 때 기록을 보면 왜구를 퇴치하기 위해 거북선을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배를 거북이 등과 같이 만들어 검을 꽂았다고 한다. 왜구들이 상대의 배로 뛰어들어 공격하는 전법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거북선을 만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왜선들이 우리 전함들보다 빨라서 번번이 이들을 놓쳤기 때문에 쾌속선을 만들어 따라잡고자 한 것이다. 거북선은 적들이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적선들 사이로 침투해 적선을 격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 초 만들어진 거북선은 이후 계승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세종 초 대마도 정벌을 하게 되고 이후 왜구 침입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굳이 거북선 같은 전투함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던 거북선은 근 200년 만에 이순신의 거북선으로 다시 등장했다. 이 거북선은 그동안 발전한 새로운 전함, 바로 판옥선을 기반으로 했다. 거대한 전함인 판옥선은 왜구의 침략이 중종 때 다시 시작되자 이들을 무찌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배를 거대하게 만들었던 주된 이유는 화포를 실어 안정적으로 화포를 발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판옥선을 기반으로 조선 초 왜구들 사이로 돌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상갑판을 덮은 배, 즉 거북선의 개념을 받아들여 완전히 새로운 돌격선인 거북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거북선은 많지 않았지만 왜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왜군은 거북선을 ‘메쿠라부네’라고 부르며 무서워했다. ‘메쿠라’는 ‘눈이 멀었다’는 뜻인데, 거북선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영화 ‘한산’에서처럼 거북선은 적선을 들이받아 격파하는 배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영화에서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상상한 장면이다. 거북선이 적선들 사이로 들어가면 왜군은 속수무책으로 거북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격하려고 해도 사람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선 사이로 들어선 거북선이 화포 공격을 퍼부으면 근거리 공격인 만큼 백발백중으로 적선을 맞히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전함들이 왜선을 들이받는 것을 ‘당파’ 전술이라고 부른다고 잘못 알려졌는데, 당파란 대포를 쏴 적함을 쳐부순다는 뜻이다. 왜선이 우리 전함보다 약해서 서로 부딪치면 왜선이 손상을 입기도 했지만 이는 거북선의 정상적인 전술은 아니다. 이것은 당파가 아니라 ‘촉파’라 부른다. 왜군이 거북선을 왜 무서워했는지 이해를 못 하면 이렇게 엉뚱한 상상이 나오게 된다.

잘 모르는 것을 함부로 상상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된다. 자신이 아는 잣대로 판단하려는 일을 삼가고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한다면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것 같은 허위정보에 휘둘리지 않게 될 것이다.

#거북선#이순신#임진왜란#판옥선#왜구#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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