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김건희 여사 엄정한 사법처리만이 尹정권 살길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8일 23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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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참패 원인은 부인 문제로 공정 이미지 상실
검찰, 金여사 공개 소환해 철저히 수사해야
봐주기식 시간 끌면 신뢰만 더 잃고 결국 특검행
“내 팔 잘라낸다” 춘풍추상 보여야 신뢰 회복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총선 며칠 후, 총선 결과보다 더 놀라운 얘기를 여권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전언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머지않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수많은 보수 지지자들이 울분과 절망감을 겪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 부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건가?…’ 귀를 의심하면서, 그들이 잘못 관측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들의 관측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일들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별로 변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 16일 국무회의 발언에 이어, 17일 새벽엔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설 파동이 비선라인의 활동재개를 다시 확인시켜줬다. 총리·실장설은 공식 인사·정무·홍보 라인이 아니라 대통령 부부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의 원인이 한동훈 대표와 당의 잘못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공천 개입을 자제하는 등 당을 위해 “그렇게 해줬는데도” 선거를 망쳤다는 것.

부정확한 인식이다. 참패의 원인은 99% 대통령이 제공했다. 최고 지도자가 모든 허물을 안고 가야 한다는 도의적·정무적 차원에서의 표현이 아니다. 객관적·실질적으로 분석할 때 거의 전적으로 대통령이 패배요인을 제공한 선거였다. 물론 윤 대통령 이외에도 패배 원인은 100가지도 넘게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백개를 다 합쳐도 총량에서 전체 원인의 1%가 안된다.

윤 대통령이 국민 과반수의 미움을 사게 된 근본 원인은 자신의 최대 장점이고 경쟁력인 공정 이미지와 정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부인을 감싸고 돌며 사과마저 거부하고, 오만과 불통 이미지를 끊임없이 각인시켜준 결과다. 조국 추미애가 대통령 윤석열 탄생의 1등 공신이었듯, 이젠 품앗이하듯 윤 대통령이 조국 추미애 부활의 1등 공신 역할을 해준 셈이다.

대통령이 힘과 권위 신뢰를 되찾으려면 공정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김 여사 문제를 국민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으로 처리해 매듭짓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 다수는 이념적·당파적 스펙트럼을 좌 극단 1, 우 극단 10으로 가정할 때 4~8사이의 중도 온건진보 온건보수 성향 사람들을 뜻한다.

대통령 주변의 비선 강경파들은 “하나를 내주면 열을 요구할 것”이라고 만류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1~3 좌파는 하나를 받으면 열을 요구하겠지만 그들은 어떤 경우에든 그러는 세력이니 대책을 세울 때 아예 고려의 대상에 넣을 필요가 없다. 오로지 3~8 국민들만 바라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들이 외면하면 정권은 고립된다.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지, 계속 감싸기만 하면 하나가 아니라 전부를 잃게 된다.

첫걸음은 검찰의 엄정한 사법처리다. 김 여사를 빠른 시일 내에 공개 소환하고, 압수수색을 포함해 적극적 수사의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 “탈탈 털었다”가 대통령의 입이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 저절로 나올 수준이 되어야 한다.

김 여사의 유죄를 예단하는 게 아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계좌주 91명 가운데 기소된 사람은 1명이고 그나마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리적으로 따져 결국 김 여사가 무죄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해도 엄정한 사법절차를 거쳐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명품백 사건도 김영란법 조항에 따르면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수수는 직무연관성이 있는 경우만 처벌대상이 되므로 김 여사는 법리적으로 무혐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해도 철저한 조사와 사법절차를 거쳐 결론이 나야 한다.

물론 아무리 엄혹한 수사와 재판을 거쳐도 야당은 더 거세게 특검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여론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며 여당 내 이탈도 없을 것이다. 국민도 특검 만능론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처가에 대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다른 선택 대안이 없다. 감싸려 해도 결과적으로 똑같은 코스로 끌려갈 가능성이 크다. 소환 조사조차 안 받은 현 ‘봐주기’ 상태에서 특검법이 상정되면 여당 새 지도부가 사실상 동조해주거나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설령 이번에 특검을 피한다 해도 다음 대선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후보들도 경쟁적으로 여사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느 정권이든 비선 실세로 지목된 인물과 관련한 의혹이 불거진 뒤 그냥 덮고 갈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전두환 때 전경환이 그랬고. 노태우 때 박철언이 그랬고, 김영삼때 김현철이 그랬고, 김대중때 홍삼트리오가 그랬고, 이명박 때 이상득이 그랬다. 문재인 전 대통령 가족만 예외인 것은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을 건드리는 걸 한사코 마다하기 때문인데, 다음 정권도 그럴까?

만에 하나 김 여사가 구속된다고 가정하자. 여야 모두 으스스 떨고 국민 사이에 동정론이 일 것이다. 판사들도 이재명, 조국 사건에 대해 야당 눈치 보기를 하기 어렵게 된다. 수백 건 쏟아질 선거사범 수사, 경기동부연합 등 종북세력 수사도 힘을 받게 된다.

비리 발생 시점이 재임 중이라면 가족의 구속수감이 정권의 도덕성에 타격이 되지만,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12년도 더 지난 결혼전 얘기다. 부인마저 심판대에 세운 대통령에게서 뿜어 나올 춘풍추상의 기세는 국정 주도권을 확실히 쥐여줄 것이다. 지도자는 스스로에게 엄격할 때 국민에게 말이 먹히고 기강이 잡힌다.

오만·불통과 부인 감싸기는 같은 맥락에서 생기는 문제다. 내가 대통령이니 가족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수 있다는 오만, 법에 규정된 특별감찰관이라도 내가 싫으면 비워둘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뭉개고 가자고 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라는 권위의식이 진솔한 사과 대신 “아쉽다”고 눙치고 가는 KBS 대담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을 상황을 자초했다.

권위의식은 윤석열 리더십의 근본적 문제다. 취임 초 주변에서는 “대통령이 ‘컨보이’(convoy·경호차 행렬)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들이 나왔다.

참모들에게 버럭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실 주변에 ‘오대수’란 은어가 돈다. ‘오늘도 대충 수습하고 간다’는 뜻이다. 이래선 어떻게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50분’이란 별명(회의 내내 본인이 말한다는 비유)이 붙을 정도로 경청보다는 가르치려드는 대화 스타일도 바꿔야 한다.

당장 나라에 닥칠 상황은 험난하다 경제 환경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고, 미국 대선, 중동전 등등 악재가 겹겹이 쌓여간다. 이를 헤쳐가며 4대개혁을 하려면 국민 신뢰가 절실하다.

혹여라도 윤 대통령이 ‘여태 103석으로도 꾸려왔고 이제 108석인데 여태 해왔듯 밀고 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 ‘개혁만 꾸준히 해나가면 국민이 평가해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이렇게 불신당하는 상태에서는 개혁이나 정책도 힘을 받을 수 없고, 우파 대통령의 권위주의 일방통행 불통에 5년간 진저리를 친 국민은 다음 대선에서 좌파로 기울 것이다. 지금 근본적 변화를 거부하는 건 앞으로 3년을 까먹는 건 물론이고 보수의 미래,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앞날을 망치는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김건희#사법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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