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운항선박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84〉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8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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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한 척에 50명 정도의 선원이 탔다. 돛을 세우고 내리고 하는 데에 많은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519년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떠날 때 5척의 범선에 27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돛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자 선원 수가 확 줄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항해에 8명, 기관에 8명 그리고 식사 준비에 4명 이렇게 20명인 것이 통상이었다. 이런 체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선박을 항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관이 작동되어서 추진력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기관부에서 담당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항해 중 항해사들은 선교에서 당직을 서면서 접근하는 선박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24시간 한 사람이 당직을 설 수 없기에 3교대로 4시간씩 당직을 선다. 그래서 항해 부문의 경우에 3명의 항해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경계하고 조타기를 잡는 부원 3명이 필요하다. 기관부도 이런 당직 체계다. 항해 중 선교에는 당직 항해사 1명과 당직 타수 1명이 짝을 이루어 당직을 선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둘은 온갖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4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출항 전 이국의 땅에 내려서 경험한 술집, 백화점에서 쇼핑한 물건 등의 에피소드로 시간을 보낸다. 젊은 당직 항해사는 나이 많은 당직 타수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의 바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 참전과 같은 것이 그 예다.

1980년대부터 기관의 운항은 꼭 기관실에서 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Man-Zero 선박이 등장했다. 야간에는 사람이 당직을 서지 않고 방에서 경고등이 오면 기관실에 내려가서 해결하는 시스템을 택했다. 항해 부문은 충돌 사고를 피하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취하지 않고 여전히 1명의 항해사와 타수가 3팀을 이뤄 교대로 당직을 선다. 항해 부문에서도 자동조타라는 제도가 도입되어 당직자들이 편하게 되었다. 침로를 정해서 입력해 두면 자동장치가 스스로 알아서 항해하는 것이다.

1986년 새 배를 인수하여 호주로 내려가면서 자동장치가 고장 나서 보름 동안 종일 침로를 맞추어 당직 타수와 항해사인 내가 항해한 적이 있다. 고역이었다. 항해를 도와주는 자율장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최근 무인선박 혹은 자율운항선박이 각광을 받고 있다. 선원을 선박에 태우지 않고 운항한다는 것이다. 각종 자동운항 프로그램에 따라 인공지능(AI)이 선박을 운항한다. 완전히 무인으로 선박이 운항되는 것은 아직 부담스럽다. 선박은 자율로 운항하지만, 육상의 운항실에서 운항사가 선박의 움직임을 모니터로 보고 있다가 개입한다. 원격조종을 하는 셈이다. 자율운항선박 3단계 상황이다.

20명의 선원도 필요 없어지게 된다. 원격조종실의 모습이 궁금하다. 우수한 자동장치로 운항되기 때문에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잘 항해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운항사 한 사람이 두세 척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선원들이 대폭 줄어들게 되어 경비도 절감되고 인구 감소 시대에 산업을 지탱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자율운항선박의 도입으로 잃는 것도 많다. 낯선 나라 방문으로 설렜던 경험, 여명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바다의 낭만은 사라지게 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자율운항선박#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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