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한동훈은 절박하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7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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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민주당 “절박해야 총선 승리”
의원 수 감축 국힘개혁안쯤은 한가하다
대통령 부정평가 큰 이유 ‘영부인 리스크’
“특검법 당당히 재표결” 국민 앞에 밝히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1.17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1.17 뉴스1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명된 지 사흘 뒤면 한 달이다. ‘여의도 문법’에 맞춰 삼고초려 하는 연출을 안 했던 건 산뜻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 특권세력 폭주를 막겠다”며 가는 데마다 8도 사나이의 친화력을 보인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삼칠일이면 단군신화 속 곰이 쑥과 마늘만 먹으며 금기를 지키다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의미 있는 삼칠일이 지났는데도 한동훈은 정부여당에 실망한 민심을 돌리진 못하는 형국이다. 한 달 전보다 국힘 지지율(36%)도 높이지 못했고 4월 총선 정부 견제론(35%)도 못 줄였다(갤럽 조사).

물론 정치개혁안을 연달아 내놓긴 했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나 정치적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다. 귀책 시 재보궐 무공천 방침은 개혁안이 아니라 사과를 하며 밝혔어야 마땅했다. 불체포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의원의 재판 중 세비 반납, 의원 정수 감축안도 인요한 혁신위원회에서 권고안으로 이미 발표한 내용이다. 그만큼 한동훈이 절박하지 않다는 얘기다.

5년 전 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에선 ‘총선 승리 3대 법칙’이 혁신공천, 미래비전, 그리고 절박함이라는 정책 브리핑을 내놨다. 공천 잘하고, 단순한 진영 심판론이 아닌 미래 공약을 내놔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그보다 ‘이기기 위해선 못 할 게 없다’는 절박함이 있어야만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공유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은 2020년 4·15총선 전 소득 하위 70%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고도 선거 이틀 전엔 여당 원내대표가 “(서울 광진을) 고민정 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100%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겠다”며 노골적인 현금 살포 작전까지 외쳤던 거다.

‘윤석열 아바타’ 소리까지 듣는, 심지어 민주당에서 ‘한나땡’(한동훈이 나오면 ‘땡큐’) 하는 한동훈을 국힘이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은 그의 개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버럭’이 무서워 아무도 못 하는 ‘고양이 방울 달기’를 한동훈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을 터다. 국힘의 아킬레스건은 대통령과의 수직적 관계다. 특히 총선 공천에서 용산 입김을 막고 ‘영부인 리스크’ 해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적잖은 이가 기대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33%, 부정 평가가 59%인 1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부정 평가 이유 두 번째가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였다. 윤 대통령이 밤낮으로 외쳐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민생·물가’ 다음일 만큼 심각하다. 총선 결과는 대통령 지지율에 따라 달라진다. 한동훈은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데 후회 없이 휘두르기는커녕 벌써부터 ‘대통령 사인’에 도리도리하는 모습이다.

작년만 해도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국민 보기에도 그래야 한다”며 총선 후 특검론을 피력했던 그다. 해가 바뀌자 ‘김건희 특검’을 ‘도이치 특검’으로 바꿔 말하며 특검 반대를 밝힌 한동훈은, 시시하다.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은 무너졌다. 이젠 한동훈의 국힘이 무슨 공약을 내놔도 믿기 힘들 만큼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국힘이 총선에서 패해도 한동훈은 손해 볼 일 없을지 모른다. 훌훌 털고 변호사 개업을 해도 전관예우로 수억 원대 연봉을 챙길 수 있다. 해외 유학을 떠났다 2027년 대선 전 해맑은 얼굴로 돌아와도 대선 주자로 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 국민은 다르다. 국회가 비토크라시(vetocracy·반대만 하는 정치)에 휘둘려 윤석열 정부의 남은 3년을 허비하면, 한동훈이 참신하게 외쳤던 ‘동료 시민’의 귀한 3년도 맥없이 낭비된다.

한동훈은 용산 아닌 국힘과 국민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 그리고 사즉생의 자세로 말했으면 한다.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을 국회 재표결 할 경우, 국힘은 당당하게 표결에 임하겠다고 말이다. 취임 한 달 기자회견 자리에서 조사 시점을 총선 이후로 연기하자는 조건을 걸고 밝혀도 좋다. 2020년 10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관련 수사지휘권을 배제당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풀어주도록 이노공 장관 직무대행에게 촉구하는 방법도 있다.

한동훈이 예뻐서도, 대통령 부인이 미워서도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윤석열을 찍었던 다수 국민을 대신해 하는 말이다. 그리해 준다면 한동훈은 한사코 기자회견을 피하는 윤 대통령과 대비되면서 국힘은 물론 종국에는 윤 대통령과 나라를 수렁에서 구한 정치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국민의 힘#한동훈#윤석열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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