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역사의 동력, 대통령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나올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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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존경한다던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재의결에 “부끄럽다” 사과
비전 이루려면 개인적 희생 감수해야
관료부터 도덕성 보여야 나라가 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2024년 신년사를 하고 있다. 2024.01.01. 대통령실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2024년 신년사를 하고 있다. 2024.01.01. 대통령실제공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관련 특검법을 그냥 넘기지 않을 태세다. 어제도 만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모든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숫자에 약한 나로선 김 여사가 결혼 전 주가를 어쨌다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친윤(친윤석열)계 아닌 의원들이 “검찰에서 탈탈 털었는데도 나온 게 없다”고 한 말을 믿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이 가족 관련 특검을 거부한 적 없다”는 민주당 주장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 관련 특검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반박한 건 실수라고 본다. 측근은 가족이 아닌 데다 2003년 11월 25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힘)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만 빼고 다른 야당과 공조해 열흘 만에 209 대 54로 재의결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여당은 “(대선자금 비리 은폐를 위한) 방탄특검이자 (내년) 총선을 위한 정략특검”이라고 야당을 공격했다. 국힘이 지금 민주당에 대고 하는 말과 다름없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총선을 보름 앞둔 2004년 4월 특검팀 최종 수사 발표에서 특별히 밝혀낸 게 없다는 것도 특검의 아이러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있다. 특검법이 재의결된 뒤 윤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노무현은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하기 이전에 참 부끄럽다”고 언론 간담회에서 거듭 사과를 한 것이다.

물론 ‘정치인에게는 측근이 웬수(원수)’라는 말이 있지만 측근과 가족은 무게가 같지 않다. 그러나 국민 눈에는 대통령 가족도 공적 영역에 포함돼선 안 될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 설령 대통령 부인이라 해도 국민은 권력을 위임한 바 없다. 공적 영역에 사적 관계를 앞세운다면, 그것도 일종의 부패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민생 현장에서 국민 여러분을 뵙고 고충을 직접 보고 들을 때마다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경제 외교, 세일즈 외교는 바로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자리 외교”라고도 강조했다. 그런데 어쩌랴. 국민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건 김 여사가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수십 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명품 숍을 방문한 모습이다. 그러고도 한국에서 뒤늦게 공개된 영상에선 3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을 남겼다.

작년 12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가 62%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김 여사 행보(2%)다. 2022년 2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사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김 여사 행보는 부정평가 이유에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억울하더라도 김 여사는 이미지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이달 중 윤 대통령이 가질 예정인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멋지게 대신 사과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을 설치해 김 여사의 조용한 활동을 보좌하겠다고 밝힌다면, 모질지 못한 우리 국민은 김 여사와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성장 양극화 속에 강남 빼고 전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부글거리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장관 청문회만 봐도 ‘부모 찬스’를 누리고 또 물려주며 세습자본주의를 즐기는 얌체족이 수두룩했다. 대통령은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했으나 검찰 출신 검피아·기재부 출신 모피아는 인사 회전문을 타고 공무원연금까지 받으며 몇 바퀴씩 해먹는 것을 전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고위 관료, 상층 계급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이지 않아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일수록 계속 존경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고, 계속 도덕심을 높여주는 집단이 있어 역사를 이끄는 동력이 나오는데 우리 사회에선 운 좋게 높은 자리 올라간 사람들이 혜택받은 만큼 도덕성과 책임윤리를 보여주지 못해 경제도 더는 도약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것을 윤 대통령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변혁적 리더십의 요체는 비전 달성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69년 대통령직을 사임할 때 대통령 연금조차 사양했다. 국가를 위한 봉사에 대가는 필요 없다는 신념이 있어서다. 조희대 대법원장 같은 유능하고 깨끗한 인선을 계속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공직사회가 달라지고, 보수세력이 달라지고, 젊은 세대 눈빛이 달라지면서, 나라엔 새로운 활력이 넘쳐날 것 같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노블레스 오블리주#역사의 동력#개인적 희생#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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