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정부의 규제 혁신[기고/임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4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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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준 환경부 차관
임상준 환경부 차관
규제 전봇대, 규제 기요틴,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

역대 정부마다 규제 혁신은 국정과제 상위 어젠다였지만, 실질적 성과를 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국정 목표로 삼아 킬러 규제 등 경제와 민생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의 혁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규제 혁신은 돈이 안 드는 투자다. 국민 혈세인 재정을 쏟아붓지 않고, 투자와 진입을 가로막는 법령 하나만 바꿔도 민간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역동적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규제 몇 조항이 해당 산업의 발목에 거대한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킬러 규제로 작용해 왔던 셈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대표적 킬러 규제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꼽았다.

화평법은 도입 당시 유럽연합(EU)의 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벤치마킹했지만 선진국보다 10배 높은 기준이 설정됐다. 유럽과 일본이 연간 1t, 미국은 10t 이상의 물질만 등록하게 한 것에 비해 화평법은 100kg 이상이면 모두 등록하도록 한 것이다. 높은 등록 비용에 소요 기간도 수개월씩 걸리며 아예 제품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화관법은 물질의 독성 유형과 무관하게 일률적 규제가 적용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유엔 기준은 독성 유형에 따라 인체와 환경 등으로 유해성 물질을 분류한다. 하지만 우리는 획일적 시설 기준을 만들어, 즉각적 위험이 낮은 만성 물질을 소량 취급해도 같은 규제를 적용받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치약도 유독물질이 될 판’이란 푸념까지 나왔다.

이달 9일 화평·화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신규 화학물질 등록 기준을 국제 표준인 1t으로 조정했고, 유독물질을 급성·만성·생태유해성 등 유형에 따라 나눠 규제를 차등 적용했다. 또 등록 대상이 아닌 물질은 정부가 직접 검증해 국민 안전을 더 확실히 보장하게 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법이 개정될 수 있었던 건 시민사회와 산업계, 정부 등이 머리를 맞댄 덕분이었다. 화학안전정책포럼은 국민 안전 강화와 기업 부담 완화란 방향성 아래 2년여간 30차례 이상 토론을 진행해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지면을 빌려 참여하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 화두는 ‘행동하는 정부’다. 국민 요구에 즉시 반응하며 국민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약속이다. 화평·화관법 역시 오래전부터 개정 요구가 높았던 규제였다. 기업은 국제 기준에 맞는 규제를 요구했고, 시민사회는 형식적 규제가 아닌 실질적 안전장치를 요구했다. 이번 개정은 양쪽 요구를 모두 반영한 균형 잡힌 대안으로 현장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차관 취임 후 내부에 만든 레드팀은 개혁 태스크포스(TF) 역할을 맡아 국민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며 법 개정을 뒷받침했다. 이제 상시화된 레드팀은 앞으로도 ‘기민하게 행동하는 정부’를 뒷받침할 것이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


#규제#정부#규제혁신#화평법#화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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