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원곤]다중고에 직면한 김정은의 새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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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경제 1.4배 성장”, 통계 조작 가능성 커
한미일 대북억지력 강화 속 북-중 관계는 정체
핵보다 ‘북한판 TSMC 설립’ 선택이 생존의 길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
북한이 초조하다. 2023년 연말 노동당 본부 청사에 모여 8기 9차 전원회의를 개최한 후 내놓은 결과물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더라도 북한이 처한 다중고가 드러난다.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하는 양대 기둥은 핵과 경제이다. 2013년부터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추구하다 2018년 4월 ‘결속’한 바 있으나, 김일성 시기부터 국방과 경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병진 정책은 상수이다. 금번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한 축인 경제 성과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2022년 8기 6차 전원회의에서 “난국을 우리 힘으로 타개해야 한다”면서 경제 어려움을 인정한 것과 대비된다. 북한은 2023년 한 해 동안 12개 목표(고지)를 “모두 점령”하여 “인민 경제 전반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선전한다. 특히 국내 총생산액이 1.4배 늘어났음을 자랑한다.

2021년 8차 당 대회 때 북한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2026년까지 1.4배 경제 성장을 목표로 내세운 바 있다. 2016년 이래 포괄적 경제 제재로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진 북한이 감당할 수 없는 목표라 의아했다. 작년 9월 개최된 14기 7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다시금 목표를 재확인했지만, 북한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북한 경제 통계에 권위 있는 한국은행은 2021년과 2022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0.1%와 ―0.2%로 추정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과 건설 분야를 내세워 1.4배 성장을 주장한 이번 전원회의 발표는 목표를 맞추기 위한 정치적 통계일 가능성이 크다. 2021년 8차 당 대회 때 경제 분야 성과가 없음을 인정한 ‘최고 존엄’ 김정은이 2026년 9차 당 대회 때 이를 반복할 수 없는 절박함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우리 통일부가 제시하듯 북한 ‘실물경제’는 바닥으로 인민 생활은 어렵다.

경제 축이 흔들리므로 김정은은 군사 분야 성취에 더 집착한다. 이번 전원회의도 “국방력 강화에서 커다란 성과가 달성”되었음을 자축하는 데 열중한다. 화성-17과 화성-18, 정찰위성, 전술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무인정찰기, 신형 잠수함 등 2023년 한 해 보여준 무기를 나열하면서 “우리 국가의 전략적 힘”으로 자랑한다. 그러나 동시에 김정은은 한미일의 대북 억제력 강화 조치인 “워싱턴 선언” “핵협의 그루빠(그룹)” “한미일 3각 공조체제” “합동군사연습” 등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미국은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지금 이 시각까지도 우리 국가에 대한 각이한 형태의 군사적 위협을 가해” 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억제력 조치의 효과성을 판단하는 유효한 방법은 대상의 반응이다. 최고 지도자가 가장 높은 수준의 회의에서 장황하게 한미일 협력을 비판하는 것은 대북 억제력이 작동함을 방증한다.

대외 관계에 대한 제한된 언급도 북-중-러 협력을 연출하려는 북한 노력을 의심케 한다. 2023년 한 해를 결산하면서 최대 업적 중 하나로 내세운 북-러 정상회담은 전원회의 연설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나라 집권당들과 관계 발전에 주력”하고 “반제자주적인 나라들과 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킨다”는 것이 전부다. 내용이 빈약한 것은 정책이 연속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중-러 삼각 협력이 북한의 “신냉전” “다극 체제 도래” 주장에도 각각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편의에 의한 결합’이라는 분석이 다시금 설득력을 갖게 한다. 2023년 9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조-로(북-러) 관계를 우리 대외정책에서 제1순으로 제일 최중대시하겠다”고 공개 발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 없는 복잡한 북한의 심정이 이번 전원회의 발표에서도 읽힌다.

대남 전략전술도 무모하다. 북한을 최대치로 포용하는 한국 내 이른바 “민주” 세력도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과 함께 싸잡아 비판한다. 한반도 전역의 적화통일을 의미하는 “령토완정”을 이번에는 “핵”을 사용해서라도 달성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한국민의 북한 비호감도가 80%대에 육박하는 상황에서(한국리서치 정기조사) 북한의 전방위적 비판은 대북 억제를 우선시하는 국내 여론을 한층 강화시키는 패착이다.

북한은 경제 어려움, 북핵에 대응하는 억제력의 강화, 피상적인 북-중-러 협력, 무모한 대남 전략전술 등으로 다중고에 직면해 있다. 북한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우선시하는 ‘비핵선경’에 있다. 효용성도 제한되고 돈만 먹는 하마인 핵이 아니라 첨단 기술력이 집약된 지식사업인 북한판 TSMC 설립을 선택한다면 김정은의 생존력은 오히려 높아질 것이다. 한국은 핵을 포기한 북한을 기꺼이 도울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
#북한#다중고#핵#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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