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의 인생홈런]양궁 레전드 서향순 “골프는 치는 것보다 걷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8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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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궁의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 서향순(오른쪽)과 LPGA투어 진출을 노리는 막내딸 캐서린 박이 다정히 포즈를 취했다. 서향순 제공
한국 양궁의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 서향순(오른쪽)과 LPGA투어 진출을 노리는 막내딸 캐서린 박이 다정히 포즈를 취했다. 서향순 제공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은 2021년 도쿄 올림픽까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7개,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 등 총 43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스포츠의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다 금메달이자 최다 메달이다.

한국 양궁의 올림픽 첫 금메달은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당시 17세 여고생이던 서향순(56)의 활에서 나왔다. 이 대회가 자신의 첫 국제대회였던 서향순은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첫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선배 김진호(63)는 동메달을 땄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그는 “진호 언니가 경기 후 ‘향순아 고맙다. 네가 금메달을 따줘서 언니가 욕을 덜 먹는다’고 말해주셨다”며 “진호 언니야말로 진정한 대인배다. 이후에도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와 인터뷰 방법 등을 세심하게 알려주셨다. 지금도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양궁 국가대표 생활이 금메달만 선물한 게 아니다. 그는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박경호(60)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은퇴 후인 1990년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를 운영했던 그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HSS스포츠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활기 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역 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수강생이 많은 양궁 클럽이다. 그는 “현지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많은 분이 찾아오신다”고 했다.

자녀들도 운동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큰딸 박성민은 골프 선수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2부 투어에서 뛰었다. 야구선수가 된 박성대는 SK(현 SSG)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한 뒤 현재 SSG의 해외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다.

그를 가장 빼닮은 건 미국에 건너올 때 배 속에 있던 막내딸 캐서린 박(19·박성윤)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 2학년인 캐서린은 올해 5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여자 골프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유망주다. 캐서린은 올해 LPGA투어의 샛별로 떠오른 로즈 장과 마지막까지 선두 다툼을 벌였다.

서향순은 종종 딸의 캐디백을 멘다. 그는 “양궁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바람 읽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 바람이 불 때는 딸도 꼭 내게 물어보고 샷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향후 LPGA투어 무대를 누비는 딸을 따라다니며 응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골프 클럽 인근의 낮은 산을 수시로 오른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산에 간다. 왕복 1시간 20분 거리의 낮은 산을 가볍게 숨이 찰 정도로 오르내린다”고 했다. 정작 자신은 골프를 썩 즐기지 않는다. 지인이나 가족들과 가끔 필드에 나가지만 스코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골프 자체보다는 잔디를 걷는 게 더 좋다. 딸의 경기를 오랫동안 따라다니려면 하루 수천, 수만 보를 거뜬하게 걸을 수 있어야 한다”며 웃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양궁#레전드#서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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