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다이아몬드 원석값 40% 하락… 원인은 ‘랩 다이아몬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4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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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A Diamond is Forever)”라는 카피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광고 문구 중 하나다. 다국적 보석기업 드비어스는 1947년 내놓은 이 광고로 ‘결혼반지=다이아몬드’란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생산량을 줄여서라도 가격을 유지하는 고가 전략으로 유명하다. 그러던 드비어스가 고집을 꺾고 다이아몬드값을 낮추고 있다.

▷드비어스는 상품 가치가 높은 ‘셀렉트 등급’ 다이아몬드 원석 값을 최근 1년 새 40% 내렸다. 작년 7월 캐럿당 1400달러였던 원석이 올해 7월 850달러로 떨어졌다. 연구실에서 만드는 보석인 ‘랩 그론 다이아몬드(Lab Grown Diamond·LGD)’ 공급이 늘어난 게 주요 원인이다. LGD의 생산원가는 천연 다이아몬드의 3분의 1 수준이다.

▷LGD는 흑연에 고압·고열을 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2∼4주 만에 만들어진다. 성분이 자연산과 동일해 전문가가 아니면 감별조차 어렵다. 예전엔 ‘인조 다이아몬드’라 불리며 가짜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가성비가 높아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다. 명품업체인 루이뷔통 모에에네시(LVMH)가 LGD 벤처기업에 투자했고, 드비어스도 직접 제조에 뛰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소환된 ‘블러드 다이아몬드’ 논란도 LGD 확산의 원인이다. 원래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민간인을 착취해 생산하는 다이아몬드에 붙던 이름이다. 지금은 다이아몬드 광석 매장량 세계 1위로 매년 5조 원어치의 원석을 수출하는 러시아가 논쟁의 중심이다. 주요 7개국(G7)은 푸틴의 전쟁 자금줄로 쓰이는 러시아 다이아몬드 수출을 차단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6월 미국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에게 7.5캐럿짜리 LGD를 선물했다. “인도 연구실에서 태양열·풍력 에너지를 사용해 친환경적으로 만든 것”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인도는 해외에서 사들인 원석으로 세계에서 팔리는 다이아몬드의 90%를 가공해 파는 나라다. 러시아산 원석 수입이 끊기면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이 때문에 논란을 피할 수 있는 LGD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LGD를 개발한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급 확대로 등급이 낮은 1캐럿대 다이아몬드 가격은 100만 원 밑으로 떨어졌다. 합리적, 윤리적 소비를 원하는 청년들의 취향과 잘 맞는다. 작년 글로벌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에서 LGD 비중은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결혼반지가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게 의미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다이아몬드#원석값 40% 하락#랩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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