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란이 일본으로 전해진 경로[김창일의 갯마을 탐구]〈99〉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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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한국에서 전해졌으나 일본인이 더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저녁에 호텔 인근 편의점에 들렀더니 한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맥주 안주를 고르기 위해 냉장식품 코너를 서성이다가 한국 젊은이들 대화를 듣게 됐다.

“명란을 일본에서는 명태 자식이라고 하나 봐. 여기에 ‘明太子(멘타이코)’라고 적혀 있잖아.” 옆에 있던 친구가 대답했다. “나는 ‘다라코(たらこ)’를 명란으로 알고 있는데 뭐가 다른 거야. 일본은 명란의 나라답게 제품이 다양하네” 등의 대화가 오갔다. 젊은이들은 명란을 일본에서 기원한 음식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해산물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말라는 아내의 엄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란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음식이다. 명란젓과 더불어 명태라는 한국식 이름도 전해졌다. 명태의 일본어 발음 ‘멘타이’에 ‘새끼’를 뜻하는 코(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가 멘타이코(明太子)다. 러시아어 ‘민타이’, 중국어 ‘밍타이위’ 역시 명태를 자국어로 발음한 것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명란젓을 먹었다. 승정원일기, 난호어목지, 오주연문장전산고, 시의전서 등의 고문헌에서 명란젓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명태 주산지인 함경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많이 먹던 겨울 음식이었다. 우리나라 근대 물류창고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남선창고가 1900년에 부산 동구 초량동에 건립되면서 부산이 명란젓 생산과 소비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함경도에서 잡은 명태를 해상으로 운송해 보관했다가 전국으로 유통한 창고였다. 이런 연유로 초창기 남선창고는 명태고방 혹은 북어창고라 불렸다.

가와하라 도시오는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명란젓의 일본 전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이 패망한 후 후쿠오카로 건너갔다. 어느 날 시장에서 소금에 절인 명란젓을 구입해 부산에서 자주 먹던 매운 명란젓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었다. 주변 사람들의 호평에 용기를 얻어 1949년부터 팔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인 입맛에 맞춘 숙성절임 명란을 팔았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 방송에서 종종 소개되는 일화이며 그는 명란을 일본에 전파한 주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에 앞서 함경도 원산에서 명태 어업을 하던 히구치 이즈하는 명란의 상품성을 알아보고 강원도 양양에 히구치 상점을 열었다. 1908년에 부산 부평동으로 상점을 옮긴 후 일본, 대만으로 수출했다.

해양문화특별전을 준비하면서 국립민속박물관 전시기획팀에서 명란젓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영상물을 찾아냈다. 일본에 소장돼 있음을 확인하고 어렵게 입수하여 현재 기획전시실에서 상영 중이다. 당시 명란젓이 생소했던 일본인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산코영화사에서 1940년대에 제작한 영상이다. 바닷가에서 명태 내장을 꺼내어 강 위에서 얼음을 깨고 씻은 후 소금과 고춧가루 등을 첨가하는 장면, 나무통에 담아서 기차로 운송해 선박으로 수출하는 과정 등이 촬영돼 있다. 이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한국식 명란젓 맛을 알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런 토대에서 가와하라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시킨 것이다. 맛에 국경은 없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명란#일본으로 전파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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