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는 울기만 한다. 삶은 망가지고 가정도 망가졌고 집을 나온 지 3개월이나 되었다. 조시마 장로를 찾아간 이유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장로는 의외의 말을 한다. “당신한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우세요.” 다만 눈물이 나올 때마다 아들이 하느님의 천사가 되어 천국에서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그 눈물에 기뻐하고 있으며, 그 눈물을 하느님께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굳이 상처를 덮으려고도, 나으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울음은 “상처를 열려고 하는 끊임없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니 울음이 나오면 울면 되고, 그 울음이 결국에는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닿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는 거다. 그는 위로의 말이 통하지 않는 그녀를 이런 식으로 위로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다 보면 비통한 눈물이 언젠가 “조용한 슬픔의 눈물”로 바뀌고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그것은 도스토옙스키가 아들을 잃고 고통스러워할 때 옵티나 푸스틴 수도원의 암브로시 장로가 해준 말이었다. 그 말을 기억했다가 소설에 등장하는 조시마 장로의 말로 바꾼 것이다.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우세요.” 위로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장로의 말이 그의 고통을 다독였다. 아주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