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진우]식량난에 흉흉해진 北 민심… 김정은 체제, 시험대 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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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정치부 차장
신진우 정치부 차장
#.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논란이다. 개정안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한국에선 매년 수십만 t의 쌀이 남아돈다. 이를 수천억 원씩 쏟아부어 정부가 사들이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지적이 나온다.

#. 북한에선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개성 등 대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은 군인 1인당 하루 곡물 배급량까지 2000년대 들어 처음 감량했다고 한다. 정권 차원에서 위기를 느낄 만큼 식량난이 심각하단 얘기다.

‘쌀.’ 최근 남북한에서 불거진 상황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남북한 사이 비무장지대의 폭은 휴전선을 경계로 불과 4km. 서울과 평양을 기준으로 잡아도 직선거리로 200km가 되질 않는다. 남북한 주민들은 그렇게 손 닿을 듯한 거리에 살지만, 한쪽에선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고, 다른 한쪽에선 쌀이 없어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피 같은 국민 세금을 증발시킬 수 있기에 송곳 검증이 필요한 이슈다. 다만 그 심각성을 놓고 보면 북한 식량난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작금의 북한 주민들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군대는 김정은 독재 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북한이 그나마 내세울 만한 국력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동안 북한에선 군인들 ‘밥’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그런 북한이 최근 군 핵심인 총참모부 소속 군인들 배급량까지 줄였다고 한다. 그만큼 주민들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방증이다.

김정은이 더 위기감을 느낄 법한 이유는 이런 식량난이 바로 자신이 재가한 식량 정책 때문이라는 데 있다. 북한 안팎에서 들리는 소식을 종합하면 주민들의 배를 굶긴 핵심 요인은 김정은의 정책 실패가 맞다. 양곡 판매 독점과 시장 통제 등을 내세운 정책이 그나마 유지되던 북한 시장 생태계까지 붕괴시켰단 것이다. 이후 김정은은 언제나 그랬듯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물었다. 최근 전원회의에선 당과 내각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김정은보다 두 배는 오래 살았을 간부들은 농사 대책 부실을 실토했다. 김정은에게 조아리고 반성문까지 썼다.

다만 이런 김정은의 ‘유체이탈 책임 회피’가 이번엔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 배고픈 주민이 너무 많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김정은의 둘째 딸 김주애의 ‘달덩이 같은’ 얼굴을 보고 분노하는 북한 주민이 많다고 한다. 광대뼈가 돌출된 자신들의 얼굴과 다른, 백두혈통의 뽀얀 얼굴만 봐도 분노하는 주민이 많다는 건 분명 심상치 않은 징조다.

우리 군에 따르면 최근 북한군 내부에서 연쇄 탈북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번 식량난이 수년간 이어질 거란 우려 섞인 관측도 나온다. 한 당국자는 “김정은이 지난해 펑펑 쏴댄 미사일 비용은 북한 전체 주민이 40∼50일 먹을 쌀값”이라며 혀를 찼다. 하늘 위로 솟구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감격의 눈물이 아닌 분노의 피눈물을 흘리는 주민이 늘어날 법하다. 그즈음 김정은 체제는 시험대에 오를지 모른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식량난#북한#김정은#양곡관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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