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의 미래, 엿보려 말고 만들어 나가자 [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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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급락에 부동산 미래에 대한 불안 커져
투자, 투기가 아닌 주거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주거 환경 안정 위해 부동산 세제 안정시키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세상에는 세 가지 헛된 가르침이 있으니 ‘사람의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며, 그것은 신의 뜻이며, 모든 것에는 아무런 원인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장아함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불교에 조예가 깊은 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해진 미래란 없으며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내일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변수의 미래값을 예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가 예측에 성공하면 그 예측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현재의 행동을 바꾸고, 그가 행동을 바꾸는 그 순간 변수의 미래값이 바뀐다. 마치 미래에서 온 재벌집 막내아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현재를 바꾸는 순간 그가 경험한 미래는 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니 미래에서 온 자라 하더라도 미래를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늘 미래를 엿보고 엿본 미래로 현재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여섯 명의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모든 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을 정확히 맞힌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한두 번 예언에 성공한 이들도 두세 번째가 되면 예언에 실패해 망신을 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톨스토이 소설에서 천사 미하일이 깨달은 그대로다.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이란 신의 질문에 그가 찾은 답은 “미래를 보는 것”이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다들 부동산의 미래를 궁금해한다. 일본처럼 장기간에 걸친 폭락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어디가 저점일지, 지금 집을 팔아야 할지 아니면 사야 할지, 불안해한다. 집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작 물어야 할 것은 묻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주거를 안정시킬 수 있는가” 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지난 1, 2년의 부동산 가격은 우리의 소득으로 지탱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버블이었고 결국 터져버렸다. 일본처럼 극단적으로 팽창하지 않고 그 정도에서 터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그동안 우리는 불안정한 주거 환경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낮은 출산율에는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집값이 지금보다 조금 더 오르거나 조금 더 내린다 하더라도, 나와 내 가족이 성실히 사는 한,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면 지금처럼 집값에 예민할까? 집값이 경기와 소득에 연동되어 움직인다면 집이 없는 것이 혹은 집이 있는 것이 그렇게 불안할까? 반면, 정권에 따라 부동산 세제가 천변만화를 거듭한다면 누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부동산 세제를 안정시켜야 한다. 정권 입맛대로 바꿀 것이 아니라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재개발이든 공공임대주택 건설이든, 안정적인 주거 환경의 구축이란 목표하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 논의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일언반구 꺼낼 필요가 없다. 집 한 칸이 절실한 서민을 배신한 보수와 진보가 무슨 낯으로 이념을 논하는가?

모든 가구가 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도 폐기할 때가 되었는지 모른다. 미국 의회보고서는 그런 정치적 믿음이 미국 주택 버블의 원인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많은 선진국에서 신혼부부는 내 소유의 집이나 전세가 아니라 월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다. 주거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소득에 넘치게 전세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도 갭투자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공공임대주택은 작고 싸고 허름해야만 하는지도 의문이다. 도쿄와 도쿄 인근에는 대단지 공공주택이 적지 않은데, 소득이 낮아야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월세를 납부할 수 있는 소득을 증명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그 대신 다양한 평수의 주택을 공급해서 월세 물건을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버블이 꺼지고 주택시장이 냉각된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시장의 장기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려 애쓰지 말고, 주택이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 시장을 만들어 나가자.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부동산의 미래#집값 급락#주거 환경#부동상 세제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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