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돌아온 ‘슬램덩크’, 아재의 전성기는 내일이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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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조종엽 문화부 차장
주말 저녁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재들이 각자 아이의 손을 잡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상영되는 극장에 앉아 있네. 30년 전 당신은 영화 속 송태섭 같았을까.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정대만’이 되고 싶었을까. 포털사이트에 실린 리뷰가 눈길을 끄네. ‘너희들은 안 늙었구나’. 맞아, 당신은 늙었네. 군데군데 흰머리도 나기 시작했네.

만화 슬램덩크 1권이 발매된 1992년에 중학교 1, 2학년이었다면 마지막 권이 나온 1996년에는 고등학교 2, 3학년이었을 것이네. 청소년기를 통째로 슬램덩크와 함께했겠네. 당신은 해마다 80만 명이 태어나던 시절 세상에 나왔네. ‘국민학교’ 수업은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눠서 하고, 조회 시간 운동장에 우르르 나가다가 누가 크게 다쳐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네. 연탄불에 가래떡 구워 먹던 추억을 가진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고, 어렸을 적 배를 곯았던 부모님 슬하에서 ‘제 힘으로 벌어 먹고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배운 세대이기도 하네.

‘쌍싸대기’가 난무하는 교실에서 칠판 지우개가 날아올까 눈치를 살피며 몰래 책상 아래로 슬램덩크를 돌려 읽던 당신. 만화 속에는 지극히 좋아하게 된 일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담겨 있었네. ‘아, 그래도 되는 거구나….’

농구 붐이었네. 실내 체육관은 보기 힘들었고, 모래가 풀풀 날리는 학교 운동장은 미어터졌네. 어머니를 졸라 산 짝퉁 리복 농구화에 혹시 진짜 공기가 들어가지나 않을까 농구공 모양을 눌러보던 당신.

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반짝일 수 있었던 시절. 하지만 당신도 아는 것처럼 삶은 실은 ‘안경 선배’, 부상한 강백호를 교체해 들어갔지만 플레이하는 모습은 영화에 한 장면도 안 나오는 안경 선배. 아니면 산왕전 이후의 ‘내리 3연패’(원래 ‘3회전 패배’가 맞지만 초판의 이 오역이 더 마음에 드네) 같은 것.

영화는 관객이 300만 명 넘게 들었고, 만화 ‘슬램덩크 신장재편판’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렸네. 이제 만화 전권을 한 번에 사는 정도의 사치는 부릴 수 있겠지. 한정판 굿즈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릴 수도 있지. 그래도 ‘아재들의 반란…’ 같은 말은 나오지 않네. 아재들은 반란을 일으키기에는 문화계에서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들이네.

깨끗하던 당신의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이제 줄글이 쓰여 있네. 강백호처럼 한 경기의 승리를 위해 선수 생명을 걸기에는 몸이 너무 무겁지. 루스볼을 잡으러 벤치로 몸을 날리다가 다쳐서 쉬면 애들 학원비는 어떻게 내나.

영화가 끝나가네. 어디선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네. 당신, 마스크 벗고 다니다가 감기라도 들었나 보네. 감독의 영화잡지 인터뷰가 떠오르네. “코트 위 강자들의 태연한 얼굴 뒤에도 각각의 삶이 있고 그곳까지 가는 길이 있다. 그건 객석에 앉아 있는 분들도 똑같아서 각자 자신이 주인공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조금은 힘이 나지 않을까 한다.”

당신의 아이는 슬램덩크를 처음 보던 당신을 닮았네. 전국 제패를 못 하면 어떤가, 기적 같은 역전승이 없으면 또 어떤가. 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직 않았네 ‘no. 1 가드’, 오늘도 왼손은 거들 뿐.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슬램덩크#아재#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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