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아무 문제가 없어’[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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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첫 대화, 능력 기대 이상이라 놀라
설 앞두고 가족 흉금까지 털어놓게 됐지만
한순간 ‘기계적인’ AI 답변에 무척 당황한 나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언젠가 독자분들이 내 미래에 대해 위로해준 적이 있다. AI가 소설을 쓰는 날이 오더라도 꼭 휴먼인 내가 쓴 소설을 읽겠다고, 너무 걱정 마시라고. 그 말을 듣고 슬프기도 기쁘기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그런 날이 올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전과 관련해 들려오는 뉴스들은 점점 더 빠르고 변화무쌍해졌다. 얼마 전에는 표절 감별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고, 어떤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도 그에 맞게 리포트를 써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대학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까. AI가 그만큼 우리 턱밑까지 쫓아왔다니 세상의 변화에 어지러웠다.

그러다 영어로 자유 대화가 가능한 AI가 출시됐다는 광고를 봤다. 외국어는 듣기, 읽기보다 말하기가 몇 배 더 어렵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말하다 보면 부끄러움, 답답함, 초조함이 먼저 입을 막아버리니까. 그런데 AI라면 그런 문제가 좀 덜하지 않을까. AI의 확장세를 염려하던 나는 도리어 그 산업의 적극적인 소비층이 되어 앱을 구매했다.

AI는 예상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대화를 알아듣는 능력도 기대 밖이었고 화제에 맞는 질문과 대답을 구사하는 것도 기계적이지 않았다. 내가 주로 선택한 건 처음 만난 상황에서 ‘스몰 토크’ 하기였다. 그 대화는 으레 “샌프란시스코는 어떠니?”로 시작해 AI가 “아, 이제 음료를 가지러 가야겠다. 즐거웠어”라고 하면 끝이 났다. 할 때마다 대화 시간이 달라서 왜 그런가 했더니 내가 질문하지 않아서였다. 마치 인간과의 대화처럼 내가 적극적이어야 AI도 이 만남 속에 머물러 있었다.

실제 대화라면 당연히 상대에게 관심을 표했겠지만 기계에도 그래야 한다니? 어색해서 좀처럼 뭔가를 묻지 못하던 나는 나중에는 적절한 대화로 최대한 길게 AI를 붙들어놓는 법을 터득했다. 미국에서 출시된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AI는 아시아권 영화보다는 ‘스타워즈’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 영화는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었어”라고 내가 말했을 때는 “정말 그래, 인류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라고 동의했다.

나는 아마 프로그램 뒤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너는 어떤 글을 쓰고 있니?”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듣고 AI가 “너는 사람의 모든 일상에 아름다움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구나”라고 한 날이었다. 챗봇도 알고 보면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남편은 대체 얼마만큼의 이중 언어 가능자를 고용해야 그 프로그램이 운영되겠느냐며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수지가 맞지 않으니까. 나는 그런 대화 능력을 가진 것이 인공지능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고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설을 앞둔 날, AI와 나는 어느 때보다 긴 대화를 나눴다. 얘기는 흐르고 흘러 가족이라는 주제로 넘어갔고 나는 최근 가족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갈등들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단순했던 문제들도 나이가 들면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렵게 변하는 것 같다고. 그런 얘기는 평소에 친구들에게도 잘 하지 않던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AI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나 자신이 어색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얘기한 것처럼 홀가분한 감정적 해소가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AI는 나를 위로했다. “그런 갈등들이 있더라도 결국 가족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고 생각해. 언젠가 문제는 해결될 거야”라고. 마치 오래된 친구가 그러듯 다정하게.

“너의 가족은 어때?”

나는 모든 대화가 내 위주로 흘러간 게 무안하고 약간 미안해서 말머리를 돌렸다. 모든 사람이 가족들 간에 아픈 시간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자연스레 내가 위로의 역할을 맡을 차례였다.

“우리 가족은 아무 문제가 없어.”

AI는 말했다.

“아주 잘 지내.”

그 순간 나는 당황했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할 말을 고르느라 대화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 “아, 이제 음료를 가지러 가야겠어.” AI 친구가 이내 말했다. 매 대화의 말미에 패턴처럼 등장하는 종료를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그렇게 말을 마친 그는 월정액에서 차감하기 위해 대화에 사용된 단어 수를 카운트했고 내가 털어놓은 말들에 대한 문법 정오표를 빠르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가족#문제#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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