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이기홍 칼럼]조작·선동꾼들과의 전쟁… 尹이 변해야 이긴다

입력 2022-09-30 03:00업데이트 2022-09-30 09:22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좌파의 조작·선동 간교해지는데
尹 ‘버럭’과 無오류 고집에
정부 여당은 대응 탄력성 상실
尹 사과해야 자막조작 공세 힘 얻을 것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기홍 대기자
내 평생 자칭 도사나 무속인의 유튜브를 보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천공 스승’이라는 사람의 유튜브를 찾아봐야 했다. 거대 야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 여왕 조문을 하지 않은 것은 천공의 지침에 따른 것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공 조문’을 키워드로 치니 무수한 블로그와 동영상이 떴다.

대부분 천공의 조문 관련 발언이 요약돼 있었는데 핵심은 “불필요한 조문을 가면 악한 기운이 묻어올 수 있다”와 “장(葬)을 치르기 전에 가는 것만이 조문이 아니다. 때에 따라 시간이 지나고 갈 수도 있다”였다.

블로거들은 여왕과 일면식도 없는 대통령 부부가 나쁜 기운을 피하려고 조문을 안 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고, “합리적 추론” “나라가 걱정된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막상 천공의 동영상 원본을 찾아보니 내용이 많이 달랐다. 명분 없는 조문을 가면 나쁜 기운이 묻어올 수 있다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그건 알지도 못하는 사이이면서 친구 따라 가는 것 같은 경우를 지칭한 것이었다. 생전에 은혜를 베풀어준 분이나 비즈니스 조문은 꼭 해야 한다는 취지로 천공은 주장했다.

‘장(葬)이 끝나고 가도 된다’는 대목은 나쁜 기운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늦게 가라는 뜻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등 직접 조문할 수 없을 경우엔 먼저 통신수단으로 조의를 전한 뒤 나중에 조문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4차원, 귀신 등등 황당한 내용과 표현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는 일반적 상식과 특별히 다른 주장은 아니었는데 좌파 진영에서는 교묘히 변질돼 퍼진 것이다. 천공의 동영상은 지난 주말 기준 조회수가 2만 건 수준인 반면 좌파인사들이 만든 관련 영상들은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필자는 천공 같은 부류를 두둔할 마음이 전혀 없다. 대통령 부부가 과거 한때라지만 무속인, 도사류 인사들과 알고 지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없고, 만약 취임 후에도 어떤 끈이 이어진다면 결코 용납키 어려운 일이다.

천공이 굳이 대통령의 영국 방문 출국 사흘 전 조문 주제의 동영상을 올린 의도도 불순하다고 의심된다. 어찌 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좌파 선동가들과 결과적 협업·공생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좌파 진영의 조작 선동은 인터넷 매체, 블로거 차원만이 아니다. “(비속어 영상 첫 방송 직전인) 22일 오전 MBC 뉴스룸은 신이 난 듯 떠드는 소리에 시끌벅적했다”는 MBC노조(제3노조)의 성명이 보여주듯 문재인 정권 때 벼락출세한 이른바 공영방송의 간부들, 관변 알짜 자리를 차지한 좌파 연구가들은 보수 정권의 댐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속·처가 같은 취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노린다.

그런 공세의 한켠에는 민주당이 있다. 그제 이재명 대표는 국회연설에서 윤 대통령의 순방외교를 외교참사라 규정했다.

필자는 주요국 대사를 지낸, 중도성향이며, 현 정권과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전직 고위 외교관 3명의 의견을 26, 27일 들어봤다. 이들의 견해는 거의 일치했다.

경솔함과 실수, 미흡한 대목들이 있었지만 국익에 해(害)가 될 일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였다.

영국 여왕 조문의 경우 정교하게 계획을 못 짠 외교팀의 무능, 막힌다고 조문을 쉽게 포기한 현장 판단은 아쉽지만 그 자체로 우리가 결례를 하거나 국익이 훼손된 사안은 아니라는 평가다. 오히려 국내에서 지나치게 이 문제를 시비거는 게 호스트(영국)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결례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일정상회담도 만난 것 자체가 잘한 일이며. 찾아가서 만났든, 일본 측이 이를 간담으로 부르든 그게 만남이 이뤄졌다는 사실 자체를 훼손시킬 만큼 의미를 둘 일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회담의 모양새가 정상적이지 않게 된 것은 정상회담을 하고는 싶지만 징용문제에 대한 패키지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식 회담은 꺼리는 일본 측의 미묘한 입장이 영향을 미쳤으며, 그런데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회담이 이뤄질 것처럼 미리 장담한 대통령실 참모의 경솔함과 경험부족은 책임을 물어 마땅하지만 그래도 만난 것은 잘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4년 1월 다보스포럼 때 아베 총리가 헬기를 타고 일찍 와 박근혜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던 홀 맨 앞자리에서 경청했지만 박 대통령은 연설 후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당시 아베의 행동은 굴욕외교가 아니라 적극적 대화의지 과시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평가가 객관적인지 아닌지 이 대표도 주변의 외교 전문가들을 비공개로 불러 의견을 들어보기 바란다. 이 대표가 순방 외교 전체를 외교참사라 규정한 것은 자신의 외교적 무지를 자인한 것이거나, 선동가적 낙인찍기 기질을 드러낸 것, 둘 중의 하나다.

본질과 해프닝을 구분하는 능력의 결핍일 수도 있다. 외교참사라는 것은 잘못된 방향설정이나 중대한 절차상의 실수로 국익에 상당한 해를 끼친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2019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방문 때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말을 한 것은 해프닝성 실수지만, 3불 합의나 중국 혼밥은 외교참사에 해당한다.

저질 좌파와의 대결은 문재인 5년 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출범한 윤 정권으로선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런데 정부여당의 전열(戰列)을 보라.

MBC의 자막 조작 의혹, 민주당과의 유착 의혹, 풀영상 외부 유출 경위 등은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MBC의 행태는 사법적 차원은 몰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상정돼 공정한 심사를 받는다면 중징계를 면치 못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공세에 나선 대통령실과 여당 의원들은 등에 커다란 돌덩이를 하나씩 지고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이 실언을 사과하지 않은 채 공격을 명한 것은 골목길 불량배들을 쫓아내겠다며 뛰쳐나갔는데 아랫도리를 입지 않은 상태인 것처럼 시작이 꼬인 전투다. 바지 입는 것처럼 간단한 유감 표명을 안 하니까 일선에서 돌격하는 병사들이 마치 사령관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싸우는 병사들처럼 어깨가 무겁고, 진격 구호에 위엄과 권위가 안 생기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사과를 왜 한사코 거부하는 걸까. 왜 대통령실의 첫 대응에 15시간이나 걸렸을까.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 문제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의 반응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화가 난 모습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난제가 터지면 지도자는 참모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각자 생각하는 대책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 지도자가 먼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면 참모들은 결이 다른 제안을 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전두환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취임 후엔 자신의 발언이나 SNS 문자가 빚은 논란들에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없다. 신이 아닌 이상 5년 동안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앞으로도 어떤 실수를 하든 버티며 매번 나라를 흔들 것인가.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윤 대통령이 일부 검사들에게서 발견되는 ‘무(無)오류 신화’를 털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무오류 지도자가 아니라 크든 작든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는 용기와 정직성이다.

문 정권 5년 청산은 매우 난도 높은 과제다. 최고의 리더십과 전략, 타이밍을 갖춰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대통령실과 내각에 보신주의 관료들과 온갖 끈을 쥐고 온 눈치꾼들이 다수 등용돼 약체로 평가받는데, 그런 약체팀의 입마저 대통령의 ‘버럭’에 주눅 들어 봉쇄된다면 조작·선동 전문가들의 전쟁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