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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객관적이라는 형식주의[임용한의 전쟁사]〈225〉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2-08-16 03:00업데이트 2022-08-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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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 절망적이던 전황을 바꾼 건 조선 수군의 승전이었다. 이순신은 1, 2차 출정에서 연이어 승리하고, 선조에게 건의사항을 올렸다. 포상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조선의 법에 군공을 세운 사람을 포상하는 기준은 적의 머리였다. 적을 죽인 증거를 가져오면 그를 기반으로 포상했다. 이것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되던 법이다. 보병들이 스크럼을 짜고 싸우던 전쟁에서 이런 포상법은 의미가 있었을 거다. 그러나 전쟁은 훨씬 진화했다. 특히 해전은 적군 개개인을 살해하는 것이 아닌, 적함을 격파하고 배에서 적군을 몰아내는 전술적 움직임이 중요했다. 이순신은 이것을 지적한다. 정말 용감하고 훌륭한 장수는 적선, 그것도 중요한 적의 기함을 공격해 파괴하는 장수다. 그런데 난파한 배의 적군은 바다에 떨어진다. 전투 중에 그들을 쳐다볼 틈도 없다. 그런데 이런 장병은 증거가 없다고 포상할 수가 없다. 반대로 싸움터 뒤에 처져서 물 위에 떠다니는 시신이나 줍는 병사들은 포상을 받는다.

이순신은 머릿수로 포상하는 법 대신에 전투에서의 활약을 지휘관이 살펴서 추천하는 사람을 포상하자고 건의한다. 선조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증거가 없다,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짜 속셈은 이순신이 포상권을 이용해서 군을 사병화할 수 있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이런 의심도 치졸하지만, 객관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 현대인들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선조의 주장에 동조한다.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관적 평가는 증거가 없잖아요.” 이순신의 요지는 적의 머리는 제대로 된 전공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도 사람들은 주저한다. “물증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인문학 교육이 필요한 건 사물의 본질을 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본질 대신 단어와 고정된 가치에 매몰되게 하는 데 더 실력을 발휘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어처구니없는 갈등과 편 가르기로 분열되는 것도 잘못된 교육 탓이 아닐까?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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