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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나의 친애하는 과학자 친구[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2-06-03 03:00업데이트 2022-06-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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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 교수, 연구비 됐어!” 위층에 있는 생명과학과 이 교수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웬만해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 친구다. 작년엔 과학재단 연구비 지원 사업에 프로젝트를 신청했다가 그만 떨어졌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마디가 “개구리는?!”이었다. 연구비 심사에 떨어져 낙담하는 교수보다 실험실에서 키우는 개구리들이 솔직히 더 걱정됐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후 1년을 연구비 없이 어떻게든 버텨가는 친구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다행히 그 시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으면 어려운 시간은 지나가는 것일까?

생명과학과 이 교수는 대학 동기다. 대학 때는 가는 곳과 노는 곳이 달라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진 못했다. 이 교수는 도서관에서, 나는 학교 앞 당구장에서. 이제는 공동 연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리학자로서 혈당을 연구하는 나는 생물학적 지식을 구할 때 그 친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가끔 아침에 커피를 함께 마실 때 그 친구가 무심코 해주는 이야기에서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교수들은 각자 전문 영역이 있어서 자신의 연구에만 빠져 있기 쉽다. 하지만 가끔 옆 동네의 일을 엿보다가 의외의 지점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에게는 마르셀 그로스만이라는 훌륭한 친구가 있었다. 취리히 대학에서 함께 물리학을 공부한 그로스만은 수업에 자주 빠지는 아인슈타인에게 강의 노트를 빌려주기도 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해 실업자가 된 아인슈타인을 특허청에 취직시켜 주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이 안정적으로 물리학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준 친구였다. 졸업 후 그로스만은 취리히 연방 폴리테크닉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되었고, 미분 기하학과 텐서 미적분학의 전문가가 되었다. 당시 텐서라는 수학 개념은 1900년에 발표된 새로운 개념이었는데, 아인슈타인에게 이 개념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그로스만이었다.

우주에서 중력을 설명하려면 새로운 수학적 방법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평면 공간에 적용되는 기존의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라 휘어진 곡면을 기술하는 리만 기하학이 필요했다. 리만 기하학의 텐서 개념은 아인슈타인이 찾던 수학이었다. 일반상대성 이론의 핵심 방정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력에 의해 휘어진 우주 공간을 기술할 텐서 미적분학이 꼭 필요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강력한 수학적 도구를 손에 쥔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일반상대성 이론의 핵심인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1900년대 초반에 텐서라는 개념은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첨단의 개념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앞서가는 친구 덕분에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일반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고 새로운 수학적 개념이 확장될 수 있었다. 멋진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친구와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이 막걸리 한 잔의 평화가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귀하게 얻은 순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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