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이라는 공간의 마법[공간의 재발견/정성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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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드디어 식탁을 바꿨다. 거창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전 칼럼에 ‘식탁이야말로 생활의 중심이고, 근사하고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집에는 식탁이 집에서 가장 좋은 공간에 있더라’고 썼는데 내가 그러지 못했다. 이전 식탁은 나무다리 위에 유리 상판을 얹은 디자인이었다. 상판 밑으로 네모난 목재 뼈대가 보이는 것이 영 거슬렸다. 차도, 집도 아니고 빨리 결단을 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사는 게 뭔지 식탁 하나 고르는 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집에 들어온 제품은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원형 식탁. 그의 시그니처인 L자형 다리가 중심을 잡고 그 위로는 희고 둥근 상판이 올라간 디자인이다. 상판 표면은 라미네이트라고 해서 생활 스크래치나 얼룩 방지를 위해 코팅이 돼 있다. 오며 가며 그 화사하고 밝은 컬러와 디자인의 식탁을 보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행복해지고 싶으면 식탁부터 바꾸자, 하고 선언이라도 하고 싶었다. 김칫국물이나 쌈장을 떨어뜨려 자국이 남을까 걱정이 돼 첫날에는 식탁 가득 주방에서 쓰는 거즈를 깔고 밥을 먹었다. “애들아, 조심해. 뭐 떨어지면 바로 닦아야 된다. 알았지? 알았어?” 잔소리를 하고 있자니 아내가 코웃음을 쳤다. “이고 지고 살게 생겼네.”

오랫동안 식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물건이 단순히 밥을 먹는 한순간에만 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탁은 식사 시간 앞뒤로 기분에 계속 영향을 끼친다. 식탁이 마음에 들면 그릇을 놓는 순간에도 기분이 좋고, 식사를 끝내고 다시 그릇을 치우는 순간에도 흐뭇한 마음이 든다. 나를 위해 커피 한잔을 올려놓을 때도 은근하게 와 닿는 미세하고 미묘한 즐거움이 있다. 식탁은 집에서 누리는 평안과 행복의 중심이기도 하다.

한국에 사는 덴마크 부부에게 덴마크의 생활 철학인 ‘휘게’의 핵심을 물은 적이 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죠.” 식탁에서의 시간이 집의 시간, 생활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얘기였다. 앞서 말한 알바 알토의 식탁이 출시된 때가 1920년대이니 그들은 식탁이 행복 발전소임을 그 옛날부터 알았던 거다. 식도락가이기도 한 아티스트 최정화는 생활을 “생명의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다 생명이고 먹어야 사는 존재들이니 그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 넉넉하고 아름다우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식탁에서 더,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일도 하고, 책도 본다. 소소하게 자주 행복하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식탁#공간#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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