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신화가 된 비운의 커플[이은화의 미술시간]〈198〉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1-20 03:00업데이트 2022-01-20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화가 부인의 초상’, 1918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목이 길고 눈동자 없는 여인 그림으로 유명하다. 이 초상화 속 여인도 유난히 긴 얼굴과 목을 가졌다. 나무 의자에 비스듬하게 앉은 모델은 그의 아내 잔 에뷔테른이다. 눈동자 없는 푸른 눈 때문일까. 왠지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인다. 화가는 아내를 왜 이런 모습으로 그린 걸까?

이탈리아 태생의 모딜리아니가 파리에 온 건 1906년이었다. 하루에 100점을 스케치할 정도로 다작했지만 1917년까지 작품을 거의 팔아 본 적이 없어 늘 가난했다. 보헤미안의 삶을 추구했던 그는 술과 마약에 찌든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앓았던 결핵을 숨기기 위한 방편이었던 듯하다. 건강 악화로 육체적 고통이 심해질수록 술과 약물에 점점 더 의지했다. 그런데도 잘생긴 외모 덕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모딜리아니가 참사랑을 만나 안착한 건 1917년 봄이었다. 33세의 화가는 19세의 미술학도였던 에뷔테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보수적인 부르주아였던 에뷔테른의 부모는 결혼을 반대했지만 딸은 사랑을 선택했다. 1918년 봄 두 사람은 따뜻한 니스로 향했다. 작품은 여전히 팔리지 않았지만 그해 11월 첫딸을 얻었다. 니스에서 그린 이 초상화 속 아내는 아랫배가 살짝 나온 걸로 보아 임신 초기로 보인다. 사랑을 택했으나 가난한 현실은 너무 가혹했을 터. 임신부 아내의 피로함과 무능한 가장의 우울함이 그대로 반영돼 보인다.

1920년 1월 24일 모딜리아니는 36세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남편이 죽은 다음 날, 에뷔테른은 친정집 5층 창문 밖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배 속에는 8개월 된 둘째 아이를 품고 있었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이었다. 평생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모딜리아니는 사후에야 명성이 치솟았다. 비운의 커플은 훗날 빈센트 반 고흐에 버금가는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