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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황인찬]‘일당 15만 원’ 예비군

입력 2021-12-09 03:00업데이트 2021-12-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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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최대 180일을 복무할 수 있는 ‘장기 비상근 예비군’ 제도가 내년부터 새로 시행된다. 평일과 휴일 구분 없이 하루 15만 원이 지급된다. 근무일을 꽉 채우면 2700만 원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30인 미만 중소기업의 평균 초임 연봉인 2772만 원과 얼추 비슷한 금액이다. 예비군으로 반년만 일하면 이 정도 목돈을 만들 수 있으니 일부 전역자들에게는 솔깃한 이야기일 수 있다.

▷종전에도 비상근 예비군 제도는 있었지만 연 최대 15일만 일할 수 있는 단기 아르바이트 성격에 그쳤다. 하지만 7일 예비군법과 병역법 개정안이 공표되며 근무 기간이 대폭 늘었다. 180일간의 근무는 한 번에 이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쪼개기 복무’로 이뤄진다. 부대가 우선 근무 기간을 정하지만 대원과 협의해 조정할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는 지원이 어렵겠지만 배달 플랫폼 노동자처럼 근무 조정이 자유로운 직군은 가능할 것이다. 내년 2월에 처음 선발한다니 조만간 헬멧과 철모를 번갈아 쓰는 ‘투잡 예비군’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비상근 예비군 제도가 도입된 것은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면서 현역병 충원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군 동원사단의 경우 평시에는 소수의 인원으로 유지되다가 전시가 되면 예비군이 충원돼 100% 전력의 부대로 바뀐다. 그런데 평소 이 부대에서 근무하는 현역병 비율이 8% 남짓까지 떨어지면서 전투 대비 태세 유지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자 예비군을 투입해 부족한 인원을 채우는 것이다. 2033년이 되면 한 해 충원 가능한 현역병 인력이 필요 인원인 30만 명을 밑돈다고 하니 예비군 투입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내년에 단기 예비군은 3700명, 장기는 50명 채용되는데 이런 규모가 2024년에는 단기 4500명, 장기 600명까지 늘어난다. 육군으로 시작해 공군, 해군, 해병대로도 확대된다. 포병, 정비, 통신, 보급 등 분야뿐 아니라 예비군이 늘어나면서 중·소령급 참모도 선발돼 부대 체계를 갖추게 된다. 예비군은 군기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합지졸이란 인식도 있었다. 확대되는 ‘직업 예비군’이 이런 오명에서 벗어날지도 지켜볼 일이다.

▷군은 내년부터 비상근 예비군을 모집하면서 기존처럼 장교와 부사관뿐만 아니라 사병 출신도 받기로 했다. ‘두 번 군대 가는’ 기회가 모든 전역자에게 열린 셈이다. 취업 한파 속에서도 채용 인원이 확대되는 예비군 자리는 괜찮은 중·단기 일자리로 각광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비상근 예비군은 전시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전투에 투입되는 엄연한 군인이다. 사명감 없이 일자리만 쫓다간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피해가 갈지 모른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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