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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이헌재]패자의 품격과 승자의 배려, 모두가 만든 마법 이야기

입력 2021-12-08 03:00업데이트 2021-12-0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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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패배는 항상 뼈아프다. 다∼ 걸고 한판 하는 경기에선 더욱 그렇다. 프로야구에서는 한국시리즈가 모든 걸 다 걸고 치르는 무대다.

지난달 끝난 2021 한국시리즈의 주인공은 프로야구 제10구단이자 막내인 KT 위즈였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시작으로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까지 넘었던 두산 베어스는 정상 문턱에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며칠 뒤 준우승팀 두산은 이례적으로 본보를 비롯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내용은 더욱 색달랐다. 제목부터 ‘KT 위즈의 우승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였다. 배경 사진으로는 김태형 감독을 비롯한 두산 선수단이 3루 라인 쪽에 도열해 KT 선수단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사진을 썼다. 7년 연속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김 감독은 시리즈 전 “2등은 서글프다. 1등을 해야 좋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싸우고 진 뒤에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박수를 보내는 김 감독의 뒷모습에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함께 내년을 향한 각오가 엿보였다. 구단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도 같은 내용을 팬들에게 전했다.

우승팀 KT는 6일자 신문 전면광고를 통해서 화답했다. 목발 투혼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최우수선수(MVP) 박경수를 비롯한 KT 선수들의 사진과 함께 ‘모두가 한마음으로 만들어낸 마법 같은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내용에는 ‘끝까지 함께 뛰어준 두산 베어스와 모든 구단의 땀과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라고 썼다.

1년 전 한국시리즈 우승은 프로야구 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차지했다. 역시 상대였던 두산은 한국시리즈의 패배가 확정된 뒤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올해처럼 도열해 창단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NC에 박수를 보냈다. 그 한 해 전인 2019년에는 우승한 두산 선수들이 상대팀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의 도열 박수를 받았다.

한국시리즈에서 진 팀의 ‘도열 박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5년 두산과 삼성이 맞붙은 한국시리즈부터였다. 당시 삼성 선수단은 1승 4패로 패한 뒤 그라운드에 남아 두산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류중일 당시 삼성 감독은 “상대가 우리보다 잘했기에 축하를 보내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동시에 우리 선수들이 정상에 선 두산 선수들을 보면서 뭔가를 느끼길 바랐다”고 했다. 삼성 선수들이 몸으로 실천한 ‘패자의 품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삼성 선수단 역시 뜻밖의 ‘도열 박수’를 받은 경험이 있다. 2011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시리즈에서였다. 아시아 각국 프로야구 우승팀들의 클럽 대항전에서 삼성이 일본 챔피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결승전에서 꺾고 우승했는데 당시 소프트뱅크 선수들은 더그아웃 앞에 도열해 삼성의 우승을 축하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작은 전통으로 자리 잡은 승자에 대한 존중과 패자를 향한 배려는 시즌 마지막을 훈훈하게 했다. 마법처럼 살아난 작은 온기가 내년에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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