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철희]콜린 파월, 영원한 군인

이철희 논설위원 입력 2021-10-20 03:00수정 2021-10-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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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김대중(DJ)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자신을 ‘디스 맨’이라고 칭한 부시의 결례 못지않게 DJ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회담에 배석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이례적인 이석(離席)이었다. 부시가 대화 도중 갑자기 파월에게 눈짓을 하자 파월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파월은 전날 언론에 “새 행정부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밝혔었다. 밖으로 나간 그는 기자들에게 “내가 앞서간 것 같다”며 자신의 발언을 번복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 네오콘(신보수주의) 강경파에 둘러싸여 있던 파월의 처지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자메이카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파월은 학군장교(ROTC)로 임관한 이래 군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냉전 말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역대 최연소이자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에 올랐다. 그는 1991년 걸프전쟁을 이끌며 무력 개입은 분명한 목표 아래 압도적인 전력을 사용해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는 ‘파월 독트린’을 보여줬다. 그 명성 덕에 공화당 대선 후보로 심심찮게 거론됐다.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으로서 최고위 외교관이 된 것은 그에겐 큰 시험대였다.

▷파월은 군 출신으로 국무장관이 된 조지 마셜, 나아가 대통령까지 오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꿈꿨을지도 모르지만 부시 행정부에선 외롭게 분투해야 했다.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강경한 대외정책에 맞서 온건 실용파로서 목소리를 냈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았다. 때론 원치 않는 ‘총대’도 메야 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전 유엔 연설은 그의 이력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됐다. 슬라이드까지 동원해 후세인 정권이 비밀리에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보였다. 훗날 그는 “그 일로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파월은 공직을 떠난 뒤 당파와 이념에 얽매이지 않았다. 특히 군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겐 넌더리를 냈다. 지난해 6월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엉겁결에 군복을 입은 채로 트럼프의 정치 이벤트에 등장해 구설수에 오른 뒤 군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사임해야 할까요?” 파월은 단호했다. “제길, 안 돼. 그 자리를 절대 받지 말라고 했건만. 트럼프는 완전 미치광이야.” 밀리는 사표를 내는 대신 ‘있어선 안 될 자리에 있었던 실수’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18일 파월의 별세에 애도와 헌사가 넘치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무거울 이들은 ‘영원한 선배’를 떠나보내는 군인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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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콜린 파월#영원한 군인#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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