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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우아하고 솔직한 뒤태[간호섭의 패션 談談]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입력 2021-08-18 03:00업데이트 2021-08-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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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버슬스타일 패션
조르주 쇠라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1884년.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소장.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새로운 시작은 늘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19세기 말에는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화 영향으로 정치·사회·경제·문화적으로 변화의 파급력이 컸습니다. 이 시기에 쿠베르탱 남작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탈피해 스포츠를 통한 화합을 꿈꿨죠. 그 결과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하고,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번째 근대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차기 올림픽 개최지인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졌습니다. 이 철탑은 몇 백년간 이어진 건축 양식과 예술 양식과는 정반대로 철골 구조 뼈대로만 이뤄졌습니다. 시민들은 80층 높이의 철탑이 무너질까 두려워했고, 예술가들은 파리를 망치는 비극적인 가로등이라며 냉소를 퍼부었죠. 막상 에펠탑이 공식적으로 공개되자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설계자 에펠은 총공사비 800만 프랑 중 150만 프랑의 지원금만으로 탑을 건설했는데, 박람회 입장료 수입으로 나머지 공사비를 충당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 조류가 패션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전적 아름다움의 상징인 커다란 크리놀린이 사라지면서 스커트 폭이 줄어들고, 남는 스커트 자락은 자연스레 뒤로 모아져 버슬(Bustle) 스타일로 탄생했습니다. 버슬이란 드레스 뒷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받침대를 뜻합니다. 스커트를 주로 엉덩이 부분에서 모아 늘어뜨리고, 리본 러플 레이스 코르사주 등으로 장식했습니다. 17세기에도 버슬처럼 뒤를 강조하는 폴로네즈(Polonaise) 스타일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한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특정 무곡에 어울리는 드레스를 뜻하거나, 잠시 유행했던 스타일이었죠.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실용화의 영향, 올림픽 이후 스포츠가 대중적인 여가 활동으로 자리 잡으며 활동적이면서 우아함은 잃지 않는 버슬 스타일 패션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1880년대에는 직각에 가까운 모양의 버슬이 인기였습니다. 버슬 위에 쟁반을 놓고 차를 마시거나, 체스를 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19세기 말에 앞서 등장했던 17세기 버슬 스타일은 ‘퀴 드 파리(cul de paris)’, 직역하면 ‘파리의 엉덩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에펠탑의 전체적인 모습을 버슬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으로 본다면, 탑 밑부분 아치는 흡사 버슬 스타일의 뒤태를 보는 듯합니다. 상징적인 파리의 엉덩이라고 할 수 있죠. 올림픽을 통한 시대정신이 활동적이며 실용화된 패션을 이끌어냈고, 에펠탑을 세운 공학기술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감성에 눈을 떴듯이 버슬 스타일은 앞만 바라보던 미의 시각을 뒤로 옮겨 놓았습니다. 사람도 패션도 앞은 쉽게 꾸밀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뒤는 솔직합니다. 세기말의 버슬 스타일은 그 시대의 우아하고 솔직한 뒤태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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