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속[간호섭의 패션 談談]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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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크리놀린 패션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 ‘외제니 황후’, 1854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 ‘외제니 황후’, 1854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크리놀린(crinoline)의 어원이 참 재미있습니다. 라틴어로 머리카락을 뜻하는 크리니스(crinis)와 뻣뻣한 마(麻)라는 뜻의 리눔(linum)이 합쳐진 단어로, 치마를 종 모양으로 커다랗게 부풀리기 위해 입던 버팀대를 말합니다. 최대로 둥글게 폈을 때에는 혼자 입지도 못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사방에서 크리놀린을 들어 머리부터 아래로 씌워주기도 했죠. 후에 피라미드 모양이 나오기도 했고, 크리놀린 크기가 줄어드는 게 유행일 때는 남는 스커트 자락을 뒤로 모아 힙이 강조되는 ‘버슬 스타일’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초반의 크리놀린은 어원대로 머리카락 대신 말 털과 마직물을 섞어 만들어 무겁고 둔탁했지만 나중에는 철사나 고래수염으로 만들었습니다. 크리놀린은 19세기 중반 쿠데타로 제정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3세 재위 기간 최고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때 파리는 미로 같던 골목을 재정비해 대로를 만들고 광장과 공원, 극장을 건설해 근대도시로 재탄생했습니다. 당시 파리 건물 지붕은 흡사 크리놀린을 얹어 놓은 듯 우아하고 낭만적이었고, 그 안에서 오페라, 발레 같은 공연과 황실 행사가 벌어졌습니다. 밖에서는 국제박람회가 열려 한동안 잊혀졌던 럭셔리한 감성과 취향이 번져 나갔습니다.

이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이 바로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 황후였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패션을 정치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외제니 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 언론에 노출됐고, 패션이 주목받았습니다. 과거 나폴레옹 1세가 부인 조제핀 황후의 아름다움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에서 교훈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정복자 이미지가 황후 덕에 순화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외제니 황후가 입은 크리놀린 패션은 유럽뿐 아니라 신대륙 미국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이 무도회에서 지쳐 크리놀린을 벗은 채 낮잠을 자는 장면은 그 시대 실제 일어났던 일입니다.

위험한 일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워낙 부피가 크고 치맛자락이 길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벽난로에 가까이 있다가 불이 옮겨붙기도 했습니다. 움직일 때 주변 물건들을 쓰러뜨리기도 하고, 마차에서 내릴 때 치마가 바퀴에 빨려 들어가 큰 부상을 입기도 했죠. 반면 물에 빠졌을 때 치마가 부력으로 부풀어 올라 익사를 면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몸을 구속했고 삶의 자유도 구속했던 크리놀린입니다. 하지만 크리놀린의 아름다운 구속 덕분에 행동이나 몸가짐이 우아해지는 건 사실인가 봅니다. 스칼렛 역의 배우 비비언 리가 촬영 내내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스커트 속 크리놀린을 벗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듯합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크리놀린 패션#나폴레옹 3세의 부인#외제니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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