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1-07-14 03:00수정 2021-07-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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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위원회 구성해 학살 자행한
여순반란은 제주 4·3과도 달라
여순반란 단죄 흐리려는 시도
대한민국 훼손의 마지막 단계
송평인 논설위원
역사가 늘 명확하지는 않다. 역사에는 거짓으로 포장된 숨은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갑자기 정체를 드러낼 때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그랬다.

“여수 시민들은 10월 20일 새벽 1시부터 들려오는 난데없는 요란한 총소리에 잠에서 깨었지만 설마 군인들이 일으킨 봉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하에서 숨죽여 지내던 남로당 조직원들도 여수 14연대의 시가전 연습이려니 생각했다. 순천의 남로당원들은 14연대가 여수를 거쳐 왔기 때문에 대응책을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여수 남로당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여수 도심에는 인민대회를 알리는 벽보가 붙고 ‘미군 철수’ 등 구호도 나붙었다. 오후 3시 여수 중앙동 로터리에서 인민대회가 열렸다. 여수 좌익계의 이름 있는 거두들이 모두 나왔다. ‘우리는 유일하며 통일된 민족적 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보위하고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의한 민주적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등 혁명과업 6개항이 채택됐다.”

여순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승만 반공체제 확립에 비판적인 김득중 국사편찬위 연구사의 ‘빨갱이의 탄생’에서 인용한 글이니 과장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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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위원회는 여수에서 8일간, 순천에서 3일간 통치했다. 반란군과 좌익세력은 여수에서 72명, 순천에서 48명의 경찰관을 죽였다. 민간인도 386명을 죽였다.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이 기독교 우익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좌익 학생에 의해 당한 잔혹한 죽음이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오늘날 개신교인들마저 그게 어느 때 일인지 잘 모른다는 게 흐리멍덩해진 역사 인식의 현주소다.

반란이 평정된 뒤 반란군과 그 협조자들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거나 수감됐다. 원한 감정이 들끓었던 반란 현장의 군사재판에서 작성된 기록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며 그마저도 6·25전쟁을 거쳐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됐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서류상 체포의 근거가 남아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시공을 초월한 듯 태연해 보인다.

국회에서는 ‘여수 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명예회복을 요구할 쪽은 반란군과 그 협조자의 후손밖에 없다.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 속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대법원이 길을 터준 기록 소실이나 기록 부실만으로 억울함을 판정하는 건 역사의 복잡한 실상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남조선노동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제주에서 4·3사건을 일으켰다. 4·3사건 진압 거부를 핑계 삼았지만 실제로는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한 14연대 남로당 세포들이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일으킨 것이 여순반란사건이다. 남로당 지도부마저 6·25 남침에 맞춰 전 군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면 하고 아쉬워한 성급한 반란이었다.

여순사건은 반란군이 인민위원회라는 통치기구를 설치하고 학살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반란 관련자의 처벌은 대체로 군사재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제주4·3사건과는 구별된다. 여순반란사건의 단죄마저 흐려지면 대한민국 군대와 사법체제를 넘어 대한민국 자체의 정당성이 도전받게 된다.

여순 반란군의 잔당이 산으로 도망쳐 지리산 빨치산이 됐다. 그 대장이 이현상이다. 이현상의 자살로 남로당의 맥은 남한에서 끊겼다. 남로당의 계보를 이으려고 한 것이 민혁당이고 통혁당이고 통진당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해구 교수를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 자신이 통진당 해산을 격렬히 비난했고 통진당 해산에 유일하게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하려 했다.

부모가 김원봉의 수하였음이 자랑거리인지도 모르겠으나 부모가 정말 김원봉의 수하였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김원웅 광복회장은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했다. 점령이라는 행정적 용어와 해방이라는 프로파간다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가 감히 역사를 거론한다. 선조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주역을 인용해 ‘야윈 돼지가 날뛰어 난장판을 만드는 꼴’이라고 했다. 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국 현대사#1948년 여순반란사건#인민위원회#학살 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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