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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깜깜이·기습 상폐에 난장판 된 코인판

입력 2021-06-29 03:00업데이트 2021-06-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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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의 ‘잡(雜)코인’ 퇴출이 줄을 잇고 있다. 거래대금 1, 2위 거래소들이 이달 들어 상장 폐지했거나 예정인 코인만 약 40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고 거래 규모도 꽤 되는 한 거래소는 하루 새 무려 145개 코인을 상장 폐지했다.

거래소들이 코인 구조조정에 나선 건 3개월 후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른 신고 의무화 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9월 24일까지 은행에서 고객의 실명계좌를 발급받는 등 신고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영업을 할 수 없다. 주요 거래소들이 신고 과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실 코인을 선제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불량 코인 퇴출은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정화 작업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투자자 피해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 대부분이 상폐 기준이나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투자자들은 ‘깜깜이 상폐’에 노출돼 있다. 늦은 밤 기습적으로 상폐나 투자 유의 종목 지정을 알리는 곳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상폐 예정 시간을 불과 3시간 앞두고 돌연 계획을 철회한 곳도 있다. 은행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했지만 거래 규모 3위인 코인빗은 코인 8개의 상폐를 공지했다가 23일 일정 연기를 알렸다. 상폐 결정 때도, 연기 때도 뚜렷한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상폐가 결정된 코인 시세가 급락하는 것과 더불어 급등하는 기현상도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상폐빔’이다. 작전 세력이 상폐 직전에 인위적으로 시세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단기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까지 불나방처럼 가세하면서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거래소들이 수수료 수입을 올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코인을 상장시켜 놓고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시킨다”며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미국 일본 등 해외 거래소에는 많게는 50여 개, 적게는 5개 코인만 상장된 것과 달리 국내 거래소엔 180개 안팎의 코인이 상장돼 있다. 전문가들도 문제가 되는 코인들을 애초부터 상장시키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지금도 구체적인 상장 기준과 절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도 ‘주먹구구식 상장’부터 ‘무더기 상폐’에 손놓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거래소가 자체 발행한 코인을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상장이나 공시 관련 규정은 빠져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최근 국회에서 “(당국이) 상장 폐지, 거래 정지까지 어떻게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만 했다.

글로벌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5월 12일 역대 최고점인 2880조 원에서 현재 1570조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300조 원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각국의 코인 규제와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시장이 출렁일수록 투자 광풍이 거셌던 국내 시장에서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주식시장처럼 코인 상장 및 상폐 규정을 제도화해 혼란을 줄여야 한다. 코인 가격 급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는 불나방 같은 투자자에게 경고도 계속 줘야 한다. 그래야 코인시장이 건전한 자정 작용을 거쳐 연착륙할 수 있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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