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유영]‘착하지 않은 기업’에 시장이 응답하는 방식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05-05 03:00수정 2021-05-0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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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남양유업 제품인지 확인해 보세요.”

스마트폰 앱에 제품 바코드를 스캔하면 남양 제품인지 아닌지 알려준다. ‘남양유없’이라는 앱으로, 하필이면 ‘없다’의 ‘없’을 썼다. 이를 만든 개발자는 제품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지만 영업 방해 혐의를 피하기 위한 설명이고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남양은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로 불매운동이 거세지자 브랜드 숨기기로 일관했다. 아이스크림점인 ‘백미당’을 열며 남양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았고, 자회사 남양F&B는 아예 ‘건강한사람들’로 사명을 바꾸고 편의점 등에 납품하는 제품에서 남양 이름을 지웠다. 그런 의미에서 ‘남양유없’은 불매운동 목적이 크다.

이렇게 특정 기업에 8년간 끈질기게 불매운동이 이어진 건 드물다. 대리점 갑질 사태 직전인 2012년엔 600억여 원 흑자였지만 이듬해 바로 적자로 돌아섰고 지난해엔 700억여 원의 적자를 냈다. 전문가들은 대리점 갑질 사태로만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아니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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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은 위기 대응 과정에서 오히려 화를 키웠다. 대리점주들이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일 땐 침묵하다가 본사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막말로 통화한 내용이 공개되고 나서야 사과했다. 하지만 책임 있는 회장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회사 측은 피해 대리점주를 고소하기까지 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로 보기 어려웠다.

경쟁사를 비방하기도 했다. 맘카페에 ‘매일유업 제품에서 쇠맛이 난다. 목장이 원전에서 가까워 그렇다’는 글이 잇따랐다. 경찰이 범인을 잡고 보니 남양유업 광고대행사 직원이었다. 남양 측은 “실무자가 대행사와 협의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실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이번에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하다. 식품에 의학적 효과가 있다고 밝히는 것은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는 게 식품업계 상식이지만, 내부에서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사내 등기이사 4명 중 3명은 회장과 회장의 장남, 회장 어머니다. 장남은 회삿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자녀를 등교시켰다는 의혹이 나와 보직해임됐다.

경영학계에서 이런 남양 사례는 위기관리 대참사로 통한다. 남양은 한때 업계 1위를 달렸다. 40대 이상이라면 기억할 법한 ‘우량아 선발대회’를 1971년 처음 연 곳도 남양이고, 금유(金乳)로 불릴 만큼 귀하던 분유를 1967년 처음 국산화해서 널리 보급한 곳도 남양이다. 아기를 튼튼하게 키우라는 창업주 뜻에 시장은 남양 주식을 주당 100만 원이 넘는 황제주로 대접했다. 하지만 대리점 갑질 사태 이후 남양 주가는 30만 원대로 떨어졌고 시가총액 역시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위기가 발생하면 책임 있는 사람이 조속히 나서서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남양은 이를 지키지 못했고 위기 대응 과정에서 위기를 더 키우고 위기가 끝난 뒤엔 비슷한 위기를 반복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기본을 저버리면 한순간에 존립을 위협받는다는 걸 그대로 보여줬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남양유업#불매운동#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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